섬뜩한 웅덩이 사진이 눈길을 내리누른다. 근육 같은 산줄기 위에 고인 물은 피처럼 시뻘겋다. 일자로 죽 그은 듯한 웅덩이 속에 괸 물이 음울한 빛을 내뿜는 광경. 지구 땅껍데기가 날카로운 흉기에 베여서 난 상처처럼 다가온다.
지난 2016년 독일 사진가 톰 헤겐이 발표한 이 사진은 독일 라이프치히 인근 석탄광산의 폐기물 웅덩이를 공중에서 내려다보면서 찍은 풍경이다
. 지난 28일 개막해 오는 26일까지 열리는 ‘5회 부산국제사진제’ 들머리에 내걸린 대표작 중 하나다.
부산 망미동 복합문화공간 ‘에프(f) 1963’에 차려진 이번 사진제에는 망가지고 상처입은 지구 환경 위기의 단면에 뷰파인더를 맞춘 국내외 사진가 10여명의 근작들이 대거 나왔다.
지난해에 이어 사진전문 기획자 석재현씨가 전시감독을 맡아 ‘인류세Ⅱ―우리 행성을 보라’란 제목의 주제전을 꾸렸다. 대기온도가 올라가 빙하가 녹고, 이상기후의 빈발과 무지막지한 인간의 착취로 신음하는 지구 생태계와 지형의 단면들, 금전의 욕망 때문에 개발을 멈추지 않는 인류의 만용을 보여주는 현장 이미지들이 핵심 볼거리다.
극지대 설산에서 밀려오는 빙하의 장엄한 장관을 담은 한성필 작가의 근작과 인간 탐욕과 환경 파괴에 대한 풍자를 담은 황규태 작가의 인간군상 합성 작업, 짓다 만 폐건축물들의 황량한 모습들을 포착한 윤승준 작가의 연작들이 눈에 띈다. 외국 작가로는 러시아 툰드라 지대의 가스채굴 현장을 포착한 프랑스 작가 샤를 젤로, 폐기물 더미 위에 중국 전통 산수화의 풍경을 합성시킨 야오루 등의 작업들이 돋보인다.
부산 지역 작가와 외국 작가의 초대전, 자유전, 학생공모전 등도 함께 마련됐다. 26일까지.
부산/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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