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부산국제사진제

전시소식

2021 BIPF x LUMOS Portfolio Review

  • 날짜
    22-06-17 13:17
  • 조회수
    94

2021 BIPF x LUMOS Portfolio Review
우수포트폴리오수상자전



 ◎ Artist Talk
6월 11일 오후 3시

◎ Opening Times
6. 11 – 7. 10
화요일 – 일요일
10:00 – 18:00
입장료 : 무료

매주 월요일 휴관





전시소개


우리나라 대표 해양도시인 부산에서 개최되는 부산국제사진제는 다른 사진축제와는 달리 사진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부산의 각 사진단체의 대표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추진하는 민간주도형 사진행사로, 복합문화공간인 F1963의 석천홀에서 2021년 8월 28일부터 9월 26일까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제5회 부산국제사진제는 작년 주제전시를 기획한 석재현(아트스페이스 루모스 대표) 감독을 연임하여 올해 2021부산국제사진제에서는 앞선 주제전의 연장선이자 주제적, 사진예술의 형식적 개념의 확장으로 <인류세 AnthropoceneⅡ_See Our Planet>전시를 선보였다. 프랑스, 미국, 멕시코, 스위스, 중국, 독일, 그리고 한국의 사진가 12명이 대거 참여하는 이번 주제전은 ‘구조’ 신호를 보내는 지구의 현재를 전 세계의 대륙으로 확장하는 전시였다.

특히 사진축제만의 특별한 행사이자 주요 행사인 포트폴리오 리뷰가 9월 5일 함께 진행되었다. ‘리뷰’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창작가가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대하여 사진분야 전문가로부터 피드백을 받고 앞으로의 창작활동 발전 방향을 모색함과 동시에 작품을 국내외에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행사이다.

부산국제사진제의 주요 부대행사로 진행되는 포트폴리오 리뷰는 작년에 이어 아트스페이스 루모스가 주관하여 참가자들의 열띤 참여와 호평 속에 성황리에 마무리된 작년 리뷰에 이어 올해 더욱 확대된 규모로 진행되었다. 국제적으로 왕성한 활동 경험과 안목을 가진 사진이론가, 미술관 관장, 평론가, 사진가, 예술감독, 큐레이터, 갤러리 대표 등 8명의 국내 리뷰어와 중국, 싱가포르, 터키 등에서 활동하는 4인의 해외 리뷰어까지 총 12명의 전문가와 함께 했다. (리뷰어 : 진동선, 최은주, 박영택, 성남훈, 석재현, 신수진, 이일우, 신보슬, BAO Lihui/China, Cosar Kulaksiz/Turkey, Gwen Lee/Singapore, Holly Roussell/U.S.A)

행사가 끝난 직후 리뷰어들의 열띤 토론을 통해 우수 포트폴리오로 3명의 사진가를 선정했다. 이번 2회 째 진행된  BIPF X LUMOS 포트폴리오 리뷰에서 우수한 작업으로 선정된 사진가는 신희수, 조진섭, 배정훈 등 총 3명의 사진가가 선정되었다.

이번 <Seeking for Solace>전시는 우수한 평가를 받은 3인의 사진가가 함께하는 그룹전으로 동시에 오픈 당일인 6월 11일 아티스트 토크 또한 진행될 예정이다.


작업노트


네버랜드-경계의 아이들

신희수


2008년 여름, 한 소년을 만났다.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리고 어두운 공원에 홀로 앉아있던 소년. 한쪽 팔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또래 아이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꼈다. 나는 그 소년에게 카메라를 가져다 대었고, 어둠 속에서 짧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점이었다.

우연한 만남 이후 매주 같은 장소를 찾았다. 주변의 눈을 피해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실 수 있는 곳. 소년이 있던 자리에는 또 다른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대부분 학교를 자퇴한 아이들이었다. 학교와 가정에서 문제아로 낙인 찍힌 그 친구들은 이곳이 숨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1년간 청소년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거리의 청소년들을 다시 만난 건 2015년 무렵. 학교에 다니지 않거나 가출한 청소년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직업교육을 실시하는 대안학교 제프에서 강사를 맡으며 그들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갔다. 아이들이 왜 가정과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그 솔직한 이야기를 사진으로 기록했다.

사랑과 보호를 받아야 하는 미성년 아이들은 부모를 포함한 어른들의 무관심에 거리로 내몰렸다. 어른들의 잔혹한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나는 과연 그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으로 비쳐졌을까?

“하고 싶은 거 많아요. 비행기 타고 싶고, 배도 타고 싶고, 네일아트 해보고 싶고, 미용실에서 염색하고 싶고, 속눈썹도 붙여보고 싶어요.”
거리에서 만난 한 아이에게 하고 싶은 것을 묻자 돌아온 천진난만한 대답. 거리의 아이들도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어른들의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하다.



막일: 노동자(worker)

신희수


벌써 5년 전입니다. 경기도 파주에서 처음 맞은 겨울이 좀처럼 잊히지 않는군요. 거동이 불편할만큼 옷을 껴입어도 손과 발끝으로 매서운 추위를 고스란히 느꼈습니다. 한쪽 어깨에 카메라를 메고 산을 오르던 제가 노가다 현장에 처음 발을 들여놓으며 치른 신고식은 그 계절처럼 혹독했습니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한다는 걱정에 겁도 없이 뛰어들었지만, 막상 제대로 된 기술 하나 없었으니 실수가 잇따랐죠. 그뿐인가요. 보온과 보호를 아우르는 용도로 장갑을 꼈음에도 차갑게 달아오른 쇠공구를 집어들 때면 제 손도 단단히 굳어버리곤 했죠. 그 손으로 어딘가를 내려치면 유리처럼 산산조각이 날 것 같았습니다.

계절의 고됨은 비단 겨울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여름이면 현장의 수많은 사람들이 한 손에 물통을 들고 제빙기 앞에 긴 줄을 섭니다. 차례가 되면 얼음을 한껏 채우고 미지근한 물을 넘치게 담아 얼른 차가워지기만을 기다립니다. 그마저도 두 시간이면 어김없이 비어버리기에 같은 행위를 몇 번이고 반복해야 하죠. 그렇게 노동자의 몸 속으로 들어간 몇 리터의 물은 이내 땀으로 배출되며 시큼한 냄새까지 풍깁니다. 김씨와 박씨, 그리고 이름 모를 저 사람의 냄새가 곧 나의 것과 같아지면 왠지 모를 동질감마저 생기곤 합니다.

그렇게 억겁의 계절을 버티는 것이겠죠. 노동자들은.

“산다는 게 날마다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전쟁임을 그땐 몰랐습니다. 목숨 부지하고 살아남는 게 얼마나 힘든 세상인지 그땐 참 몰랐습니다.”

김진숙 작가가 <소금 꽃나무>에서 노동자의 삶을 표현한 것처럼, 저도 현장 일을 하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전쟁’이라는 시퍼런 단어가 참으로 어울린다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한 언론사의 조사 결과, 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수는 하루 평균 2.47명에 달한다고 하죠. 지금도 어느 곳에서는 공기가 부족한 맨홀 안에서 들어가 작업을 하거나, 밧줄 하나에 의지해 고층 건물을 청소하거나, 빠른 속도로 차량이 달리는 고속도로 위에서 도로보수를 하는 등 수많은 노동자들이 위험에 정면으로 노출된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아무 사고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게 소망”이라던 한 가장의 말씀이 푸념으로 들리는 연유가 그 탓이겠죠.

결국 ‘먹고 사는 일’의 문제이겠지요. 그리고 누군가는 이 고된 일을 도맡아야 할 겁니다. 그래야만 어제처럼 오늘도 세상이라는 톱니바퀴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테니까요. 그럼에도 이들이 처한 좋지 못한 환경이 당연하게 여겨지거나, 이들에게 쏟아지는 차별적인 시선만큼은 지속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심심치 않게 다른 현장의 사고 소식이 들려오곤 합니다. 그런 날이면 각자의 얼굴에 경직과 침묵이 깊게 배이죠. 나의 일은 아니지만 언제라도 나의 일이 될 수 있음을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끝모를 비소식에 더욱 고된 요즈음입니다. 비소식에 비보가 겹치지 않기를, 계절 끝에 안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G의 나라

조진섭



2012년 엄마와 함께 한국에 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라는 것도 타보고 모든 것이 마냥 신기했다. 엄마와 함께 한국에 도착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공항 앞에서 서성였다. 그 때, 천사 같은 분이 우리에게 동두천이라는 곳을 알려주시며 거기에는 외국인이 많아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모든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착하게 도와주는 사람들인 줄 알았다.

그해 9월 4학년 2학기에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어린 나이에 나는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내 피부색때문에 늘 혼자였던 나는 “원숭이 깜둥이”이라며 괴롭힘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한테 다시 가나로 가고 싶다며 엉엉 울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한국어를 8~9개월 만에 완벽해진 내게 친구가 생겼지만, 나를 피하는 애들 또한 많았다.

2015년 어느새 중학교에 들어간 나는 이제 한국어도 완벽하고 모든 게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학교에는 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퍼졌고 모르는 선배들한테도 욕을 들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친구들과 점심 먹고 반에 왔는데 내 책상에 “깜둥이, 왜 사냐, 죽어, 너희 나라로 도망가,ㅅ발,ㅆ년” 이라고 쓰여진 낙서가 있었다.
엄마와 새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남동생과 지하철을 탔을 때 유독 남동생은 사람들에게 이쁨을 받았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예쁘면 뭐해. 만지지 마세요. 그쪽도 쟤네처럼 까맣게 변해요.”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럴때면 진짜 숨고 싶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항상 힘들 때 나의 버팀목이 되어주며 위로해주시는 엄마가 있어 버텨왔다. 시간이 지나면 편해진다는 말이 맞는지 어느새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뒤에서 하는 말들이 아직도 신경 쓰이지만, 예전처럼 두렵고, 숨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 곳에서 초, 중, 고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며 “한국인인 줄 알았다. 이 정도 말하면 이제 그냥 한국인이지”라는 말을 듣지만 나는 1년에 한번씩 외국인 등록증을 연장을 해야 하며, 그마저도 기한이 만료된 여권때문에 언제 거부될지 모른다. 인도적 체류비자로 더 나은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부모님을 보면 우리 가족을 보호해줄 나라는 없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태어난 내 동생의 꿈은 군인이다. 그러나 동생이 지켜야 할 나라는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Detached Objects

배정훈



50년 전 인간의 평균 수명은 50세였으나 현재는 80세로 짧은 기간 동안 급격히 증가했다. 현대인은 평균 수명이 늘어난 만큼 과거에는 많지 않았던 암, 심혈관 질환, 당뇨 등의 만성질환을 앓게 되었고 오랜 기간 질병을 가진 상태에서 결국 사망하게 된다. 반 세기 전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집에서 태어나고 집에서 죽었지만 현대인들은 대부분 병원에서 태어나고 병원에서 죽는다. 역사가 아리에스는 우리 시대의 죽음은 더 이상 공동체 안에도, 내 침상에도, 타인에게 있지 않고 병원으로 숨어버렸다고 말했다. 병원이 죽음을 판단하기 전에 우리는 아직 죽은 것이 아니고 죽음을 만나려면 병원으로 가야 한다. 병원은 질병을 다스리는 권력인 동시에 죽음을 다스리는 권력이다.

병원은 질병이 있는 사람들을 치료해 생명을 연장시키는 장소이지만 역설적으로 현대인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가장 흔한 장소이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큰 규모의 가족이 서로 친밀감을 갖고 생활했으나 현대 사회에서는 가족의 규모가 작아지고 가족간 친밀도가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질병 관리에 있어서도 전통적 가족의 돌봄에서 사회적 의료 시스템에 의한 간병으로 바뀌고 있다. 많은 노인들은 병원에 잠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망할 때까지 사회와 격리된 채 병원에 입원해 있다. 이런 점에서 병원은 사회적으로 죽음이 예정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노인들 대부분은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이 곳에서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고 죽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간직한 채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 그들은 가족들에 둘러싸여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심전도 모니터, 산소 호흡기, 수액을 포함한 각종 라인들에 둘러싸여 외롭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노인들이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그들의 과거 직업과 사회경제적 수준에 상관없이 일정한 크기의 침대와 사물함을 받는다. 규격화된 침대와 사물함이 있는 병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생활했던 그들의 주거 공간과 대조적이다. 그들은 제공받은 사물함에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지품이나 소중한 물건들을 보관한다. 사물함 위에 놓여 있는 그들의 물건들은 서로 비슷한 듯 다르다. 이들에게 주로 필요한 것들은 물병, 컵, 휴지, 물티슈 등이다. 이것을 제외한 물건들은 다양한데 사람들 각자의 성격과 개성을 엿볼 수 있다. 어느 날 사물함에 놓인 물건들이 보이지 않게 되면 그 사물함을 잠시 소유했던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갖게 되는 공간과 물건들을 보면서 삶의 부재, 허무, 무상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평소 죽음은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인 듯 죽음을 외면하고 살아간다. 하이데거는 그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죽음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우리 자신에게 닥쳐올 최대의 한계상황인 죽음은 우리의 면전에 늘 서 있음을 의식하고 죽음 앞에서 부단한 도피를 하는 대신 죽음을 자기화하여 죽음을 우리로 하여금 우리 각자의 고유의 본래성을 되찾게 하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인식하기를 요구했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이 사람들에게 지금 이 순간이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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