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SCROLL
백경게임랜드 ㉪ 바다이야기게임룰 ℡
-
- 날짜
- 26-02-27 22:40
-
- 조회수
- 0
바다이야기하는법 ┢ 백경릴게임 ∈
릴게임끝판왕 바로가기 go !!
작년 충남 홍성 유적 답사 때 모습!
대전 계룡산. 아침 햇살이 막 능선을 타고 오르던 어느 날, 중년의 한 남자가 홀로 산을 올랐다. 배낭에는 물 한 병과 오이 한 개, 그리고 등산 스틱 하나뿐이었다.
삼불봉에서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올라선 순간, 그는 눈을 의심했다. 맞은편 천황봉 아래 계곡까지 붉게 타오르는 단풍이 마치 '불이 난 것처럼' 번져 있었다.
"정말 산이 불타는 줄 알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난 뒤 한동안 계룡산에 흠뻑 빠졌어요. 똑같은 코스를 일주일에 몇 번씩 갈 정도였지요."
릴게임다운로드뉴욕버거 송명섭(63) 대표. 대전 동구에서 나고 자란 그는 훗날 토종 햄버거 브랜드 '뉴욕버거'를 창업한다. 계룡산 능선에서 느꼈던 압도적인 풍경과, 땀을 쏟아낸 뒤 오이 한 입을 베어 물며 느꼈던 상쾌함. 그 감각은 세월이 흘러 '자극적이지 않지만 오래 남는' 햄버거 맛으로 되살아났다.
그의 인생 2막은 산에서 시작됐고, 지 야마토게임하기 금도 '사람 중심' 기업 철학과 맞닿아 있다.
송명섭 대표. 형이 선물한 무한불성 액자를 배경으로 새해 진군을 다짐하고 있다. 송 대표 형은 유학에 조예가 깊다.
50세 "서울로 올라가야겠다"…인생 2막의 시작
릴게임꽁머니 송 대표의 첫 직업은 유통이었다. 1987년부터 한화유통·갤러리아백화점에서 2003년까지 15년을 일했다. 운영팀장까지 올랐다. 유통과 마트 푸드코트 사업을 병행하며 돈도 벌었다. 겉으로 보기엔 부족함 없는 삶이었다. 나이 50, 그의 야망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2012년 송 대표는 무작정 상경했다. 어찌 보면 인생 '마 황금성게임다운로드 지막 모험'이자 인생 2막의 출발점이었다. 수서역 인근 오피스텔 한 칸. 지인이 "자리 잡을 때까지 써도 된다"며 내준 곳이었다. 그곳에서 전 직장에서 함께하던 직원 한 명과 메뉴 개발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햄버거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 철판볶음(대판야끼)을 준비하며 시장조사를 위해 압구정동, 코엑스, 신촌을 매일 걸었다. 4개월 릴게임모바일 동안 '걷는 것'이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롯데백화점 잠실점에 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하려던 '대판야끼'와 똑같은 메뉴가 이미 시연 중이더라고요. '아, 이건 늦었다. 이미 누가 먼저 올라타 있다' 싶었습니다."
그때 머릿속 질문 두 가지가 그의 운명을 갈랐다. '장롱 속에 몇 년 동안 뒀는데도 안 썩었다'는 이른바 'A사의 햄버거 논란', 그리고 개당 1만 원에 육박하던 수제버거의 가격이었다.
송 대표는 일만큼 골프도 좋아한다.싱글 수준이다.
"패티는 냉동하지 않는다"…산에서 배운 '선'
햄버거를 만들기로 한 뒤, 송 대표가 가장 먼저 정한 원칙은 단순하지만 까다로웠다. 첫째, 패티는 냉동시키지 않는다. 둘째, 채소는 가공하지 않고 가능한 한 '보이는 곳'에서 준비한다.
"유통기한이 열흘이 안 돼도 감수하자. 음식 하는 사람으로서 지키고 싶은 선이 있었어요."
무역센터 인근 샌드위치 가게에서 신선한 채소를 후면에서 조리하는 모습을 보고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좋은 장점을 왜 숨기지?' 뉴욕버거는 오히려 채소 손질과 조리 과정을 매장 전면으로 끌어냈다. 냉장 패티, 비가공 채소, 오픈 주방. '산에서 배운 정직함'이 주방의 규칙이 됐다.
그는 "방부제 제로라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방향만큼은 분명히 했다.
"방부제 0%에 도전하는 CEO, 끝까지 그쪽으로 가고 싶습니다."
2,900원 햄버거, 그리고 롯데 인천점 '오픈런'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모델은 가능했다. 점주는 7,000만~8,000만 원을 투자해 매장을 열고, 직접 일해 월 400만 원 이상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였다. 고객은 3,000원대 초반의 버거를 먹는 구조였다. 그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2,900원으로 가보자."
브로슈어를 만들어 오피스텔에서 개발한 버거를 들고 다니며 여기저기 설득했다. 그때 관심을 보인 곳이 롯데백화점이었다. 첫 매장은 롯데백화점 인천점. 당시 매출이 바닥권이던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하루 종일 줄이 섰다. '오픈런'이 이어졌다. "객수가 많지 않은 점포에서 저렇게 줄을 서나, 백화점 내부에서도 놀랄 정도였어요."
롯데백화점은 추가 점포를 제안했다. 2012년 12월에는 패티 생산을 위한 법인 '엔와이푸드NY Food'를 세웠고, 이후 이마트가 먼저 연락해 왔다. 이마트에 40개가량 점포를 냈고 홈플러스도 뒤따랐다. 숍인숍Shop-in-Shop으로 몸집을 키웠다. 한때는 숍인숍 40개, 로드숍 130개까지 늘어 최대 186개 매장을 운영할 정도였다.
송 대표는 매일 하루를 웨이트로 시작한다.
로드숍의 실패… "산도 사업도 능선만 있지 않다"
성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4년 초, 건대와 인하대 후문에 낸 로드숍 두 곳은 내리 실패했다. '튀기는 건 안 한다'는 고집, 즉 소고기 패티 중심의 단조로운 품목이 대학가에서 통하지 않았다. 마침 맘스터치 '싸이버거'가 뜨던 시기였다. 그는 시장의 변화를 받아들였다. 치킨·새우 버거를 늘리고 한국 소비자 입맛에 맞춘 메뉴를 확장했다.
뉴욕버거의 메뉴 개발 풍경은 독특하다. 새 메뉴를 테스트하는 날이면 직원 30명 가까이 모여 햄버거를 나눠 먹는다. 경쟁사 제품도 한꺼번에 사와 중량, 소스, 식감, 가격을 비교한다. 블라인드 테스트와 설문조사를 거친다.
대전 동구에 매달 100만 원 기부…"언젠가 1,000원짜리 밥집"
송 대표에게 지금 가장 즐거운 활동이 뭐냐고 물었다. 당연히 '골프'라는 대답을 예상했지만 답은 전혀 달랐다.
"사업이죠. 사업이 잘되기만 하면, 사업보다 재미난 게 없습니다. 산은 정상에 오르면 끝나지만, 사업은 정상이라는 게 없습니다. 내가 머릿속에 그려온 그림이 하나씩 맞아 들어갈 때, 그 희열은 산보다 더 큽니다. 안 맞을 때가 훨씬 많지만, 그래서 더 값지죠."
그의 최종 목표는 매장 수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품어온 꿈은 '1,000원짜리 밥집'이다. 고향 대전 동구에서 어르신들이 500원, 1,000원으로 따뜻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공간이다.
지금은 동구청에 "어르신들을 위해 써달라"며 매달 100만 원을 기부하고 있다. 대전 성균관 유도회·향교 행사에도 매년 후원금을 보태고, 다원문화복지재단(정보석 이사장)의 봉사 활동이나 장애인 야구단 행사에는 수백 개의 햄버거를 보내기도 했다.
"올해는 도약의 해…말의 해엔 더 뛰어야죠"
"계룡산 능선에서 오이 한 입을 베어 물며 느꼈던 그 상쾌함, 정상에서 불어오는 바람,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야. 그게 사람 마음을 맑게 해줍니다."
송 대표에게 산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산을 오를 때도, 비즈니스를 할 때도 '능선에서 느끼는 행복'이 있습니다. 힘들게 올라간 정상에서 바라볼 때, 그 한 번의 시야를 위해 다 견디는 거잖아요."
송 대표는 "계룡산 능선에서 배운 한 입의 겸손과 유통·외식 현장에서 쌓아온 땀, 그것이 '자극적이지 않지만 오래 남는 맛'으로 이어졌다"며 "결국 삶의 자세, 산에서 배운 지혜를 통해 뉴욕버거가 탄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대전 계룡산. 아침 햇살이 막 능선을 타고 오르던 어느 날, 중년의 한 남자가 홀로 산을 올랐다. 배낭에는 물 한 병과 오이 한 개, 그리고 등산 스틱 하나뿐이었다.
삼불봉에서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올라선 순간, 그는 눈을 의심했다. 맞은편 천황봉 아래 계곡까지 붉게 타오르는 단풍이 마치 '불이 난 것처럼' 번져 있었다.
"정말 산이 불타는 줄 알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난 뒤 한동안 계룡산에 흠뻑 빠졌어요. 똑같은 코스를 일주일에 몇 번씩 갈 정도였지요."
릴게임다운로드뉴욕버거 송명섭(63) 대표. 대전 동구에서 나고 자란 그는 훗날 토종 햄버거 브랜드 '뉴욕버거'를 창업한다. 계룡산 능선에서 느꼈던 압도적인 풍경과, 땀을 쏟아낸 뒤 오이 한 입을 베어 물며 느꼈던 상쾌함. 그 감각은 세월이 흘러 '자극적이지 않지만 오래 남는' 햄버거 맛으로 되살아났다.
그의 인생 2막은 산에서 시작됐고, 지 야마토게임하기 금도 '사람 중심' 기업 철학과 맞닿아 있다.
송명섭 대표. 형이 선물한 무한불성 액자를 배경으로 새해 진군을 다짐하고 있다. 송 대표 형은 유학에 조예가 깊다.
50세 "서울로 올라가야겠다"…인생 2막의 시작
릴게임꽁머니 송 대표의 첫 직업은 유통이었다. 1987년부터 한화유통·갤러리아백화점에서 2003년까지 15년을 일했다. 운영팀장까지 올랐다. 유통과 마트 푸드코트 사업을 병행하며 돈도 벌었다. 겉으로 보기엔 부족함 없는 삶이었다. 나이 50, 그의 야망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2012년 송 대표는 무작정 상경했다. 어찌 보면 인생 '마 황금성게임다운로드 지막 모험'이자 인생 2막의 출발점이었다. 수서역 인근 오피스텔 한 칸. 지인이 "자리 잡을 때까지 써도 된다"며 내준 곳이었다. 그곳에서 전 직장에서 함께하던 직원 한 명과 메뉴 개발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햄버거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 철판볶음(대판야끼)을 준비하며 시장조사를 위해 압구정동, 코엑스, 신촌을 매일 걸었다. 4개월 릴게임모바일 동안 '걷는 것'이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롯데백화점 잠실점에 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하려던 '대판야끼'와 똑같은 메뉴가 이미 시연 중이더라고요. '아, 이건 늦었다. 이미 누가 먼저 올라타 있다' 싶었습니다."
그때 머릿속 질문 두 가지가 그의 운명을 갈랐다. '장롱 속에 몇 년 동안 뒀는데도 안 썩었다'는 이른바 'A사의 햄버거 논란', 그리고 개당 1만 원에 육박하던 수제버거의 가격이었다.
송 대표는 일만큼 골프도 좋아한다.싱글 수준이다.
"패티는 냉동하지 않는다"…산에서 배운 '선'
햄버거를 만들기로 한 뒤, 송 대표가 가장 먼저 정한 원칙은 단순하지만 까다로웠다. 첫째, 패티는 냉동시키지 않는다. 둘째, 채소는 가공하지 않고 가능한 한 '보이는 곳'에서 준비한다.
"유통기한이 열흘이 안 돼도 감수하자. 음식 하는 사람으로서 지키고 싶은 선이 있었어요."
무역센터 인근 샌드위치 가게에서 신선한 채소를 후면에서 조리하는 모습을 보고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좋은 장점을 왜 숨기지?' 뉴욕버거는 오히려 채소 손질과 조리 과정을 매장 전면으로 끌어냈다. 냉장 패티, 비가공 채소, 오픈 주방. '산에서 배운 정직함'이 주방의 규칙이 됐다.
그는 "방부제 제로라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방향만큼은 분명히 했다.
"방부제 0%에 도전하는 CEO, 끝까지 그쪽으로 가고 싶습니다."
2,900원 햄버거, 그리고 롯데 인천점 '오픈런'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모델은 가능했다. 점주는 7,000만~8,000만 원을 투자해 매장을 열고, 직접 일해 월 400만 원 이상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였다. 고객은 3,000원대 초반의 버거를 먹는 구조였다. 그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2,900원으로 가보자."
브로슈어를 만들어 오피스텔에서 개발한 버거를 들고 다니며 여기저기 설득했다. 그때 관심을 보인 곳이 롯데백화점이었다. 첫 매장은 롯데백화점 인천점. 당시 매출이 바닥권이던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하루 종일 줄이 섰다. '오픈런'이 이어졌다. "객수가 많지 않은 점포에서 저렇게 줄을 서나, 백화점 내부에서도 놀랄 정도였어요."
롯데백화점은 추가 점포를 제안했다. 2012년 12월에는 패티 생산을 위한 법인 '엔와이푸드NY Food'를 세웠고, 이후 이마트가 먼저 연락해 왔다. 이마트에 40개가량 점포를 냈고 홈플러스도 뒤따랐다. 숍인숍Shop-in-Shop으로 몸집을 키웠다. 한때는 숍인숍 40개, 로드숍 130개까지 늘어 최대 186개 매장을 운영할 정도였다.
송 대표는 매일 하루를 웨이트로 시작한다.
로드숍의 실패… "산도 사업도 능선만 있지 않다"
성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4년 초, 건대와 인하대 후문에 낸 로드숍 두 곳은 내리 실패했다. '튀기는 건 안 한다'는 고집, 즉 소고기 패티 중심의 단조로운 품목이 대학가에서 통하지 않았다. 마침 맘스터치 '싸이버거'가 뜨던 시기였다. 그는 시장의 변화를 받아들였다. 치킨·새우 버거를 늘리고 한국 소비자 입맛에 맞춘 메뉴를 확장했다.
뉴욕버거의 메뉴 개발 풍경은 독특하다. 새 메뉴를 테스트하는 날이면 직원 30명 가까이 모여 햄버거를 나눠 먹는다. 경쟁사 제품도 한꺼번에 사와 중량, 소스, 식감, 가격을 비교한다. 블라인드 테스트와 설문조사를 거친다.
대전 동구에 매달 100만 원 기부…"언젠가 1,000원짜리 밥집"
송 대표에게 지금 가장 즐거운 활동이 뭐냐고 물었다. 당연히 '골프'라는 대답을 예상했지만 답은 전혀 달랐다.
"사업이죠. 사업이 잘되기만 하면, 사업보다 재미난 게 없습니다. 산은 정상에 오르면 끝나지만, 사업은 정상이라는 게 없습니다. 내가 머릿속에 그려온 그림이 하나씩 맞아 들어갈 때, 그 희열은 산보다 더 큽니다. 안 맞을 때가 훨씬 많지만, 그래서 더 값지죠."
그의 최종 목표는 매장 수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품어온 꿈은 '1,000원짜리 밥집'이다. 고향 대전 동구에서 어르신들이 500원, 1,000원으로 따뜻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공간이다.
지금은 동구청에 "어르신들을 위해 써달라"며 매달 100만 원을 기부하고 있다. 대전 성균관 유도회·향교 행사에도 매년 후원금을 보태고, 다원문화복지재단(정보석 이사장)의 봉사 활동이나 장애인 야구단 행사에는 수백 개의 햄버거를 보내기도 했다.
"올해는 도약의 해…말의 해엔 더 뛰어야죠"
"계룡산 능선에서 오이 한 입을 베어 물며 느꼈던 그 상쾌함, 정상에서 불어오는 바람,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야. 그게 사람 마음을 맑게 해줍니다."
송 대표에게 산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산을 오를 때도, 비즈니스를 할 때도 '능선에서 느끼는 행복'이 있습니다. 힘들게 올라간 정상에서 바라볼 때, 그 한 번의 시야를 위해 다 견디는 거잖아요."
송 대표는 "계룡산 능선에서 배운 한 입의 겸손과 유통·외식 현장에서 쌓아온 땀, 그것이 '자극적이지 않지만 오래 남는 맛'으로 이어졌다"며 "결국 삶의 자세, 산에서 배운 지혜를 통해 뉴욕버거가 탄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