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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 사이다쿨접속방법 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전주사범학교 2학년 시절(1946) 신동엽. 맨 우측(사진 신동엽문학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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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에는 부여
껍데기는 가라! 읊조리거나 외치거나, 4월이면 길을 걷다가도 떠오르는 이 시는 1967년 『현대문학』 1월호에 발표되었다가, 신구문화사에서 발행한 『52인 시집』(1967년 1월)에 재수록되었다. 하지만 이보다 먼저 1964년 『시단(詩壇)』 제6집에 이미 발표되었던 것이었다. 습작시 형태 원작 바다이야기게임사이트 은 4연 "한라에서 백두까지~쇠붙이는 가라"가 3연과 뒤바뀐 모습이었다.
서울 출신이지만 4.19 이후 민중의 입장에서 현실을 비판하며 저항 정신을 강하게 드러냈던 김수영(1921~1968) 시인의 작품('풀' 등)과 함께 1960년대를 대표하는 참여문학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신동엽의 작품은 자신이 나고 자란 백 바다이야기예시야마토게임 제 지역의 역사와 동학농민혁명 그리고 60년대 암울한 현실이 더해진 역사적 소재가 다분하다. 거기에 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취재하면서 획득한 우리의 서정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시대를 건너 울림의 깊이가 있다. 보편적으로 그의 작품에서 이렇게 현실성과 역사성이 두드러진 것은 아마도 단국대 사학과 시절 역사 전공 경험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 추정을 해 봤다.
바다신2릴게임 그러니 봄날에는, 아직 봄빛 저물지 않은 4월에는, 부여 한 번 다니러 갈 일이다. 부여읍 한복판, 지금은 '신동엽길'로 지정된 부여성당 주변 동남리가 그의 태생지이며 4월 7일은 그의 기일이기도 하다. 19일은 그의 작품에 겹겹이 등장하는 4·19 혁명 추념일이기도 하니까.
#백마강(白馬江)
부여 여행을 계획하신다면 백제사 기본서 정도를 다시 펴보시길 권한다. 계백로, 성왕로, 사비로, 석탑로, 궁남로, 정림로, 서동로, 나성로, 의열로, 백강로, 부소로, 게다가 신동엽길까지, 얼핏 나열해도 부여의 중심 도로명이 이렇다. 그러니 부여 역사를 외면하면 되치기로 부여가 여행자를 외면하는 낭패를 당할 것이다. 여행의 목적은 개별적일지라도, 성공적인 여행을 위해서는 여행지에 대한 사전 학습과 대강의 설계가 만인에게 공통 과제라는 점을 밝혀둔다.
금강의 발원지는 전북 장수군 신무산자락 해발 780m 지점 뜬봉샘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갓 솟아난 씨앗 샘물이 고을고을을 돌고 지날 때마다 다른 샛강 물줄기와 합류하고 연대하면서 자연스럽게 힘을 더해 갈 것이다. 진안, 무주, 영동을 지나 공주를 거쳐 부여로 접어들었다가 강경으로 흘러 군산과 서천 장항 하류에서 몸을 풀며 서해와 만나는 물줄기가 금강이다.
역사적으로는 백강 전투(663년 8월 백제·왜 연합군과 나당연합군 간 전투), 기벌포 전투(676년 11월 나당전쟁),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1894년 11월) 때의 곰나루 등의 배경지이기도 하다.
백마강은 금강의 중하류에 해당하는 부여군 규암면 호암리에서 세도면 반조원리까지 약 16km 구간을 특별히 부르는 이름이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지점을 '두물리', 남한강이 여주를 지날 때 '여(주)강', 탐진강이 장흥읍 구간을 지날 때 '예양강'이라고 달리 부르듯, 강줄기가 지나는 지역명과 연계하여 붙인 구간 지명 또는 미시 지명이 따로 있는 경우가 있다. 지역성이 반영된 애칭 정도이다.
'백(白)' 혹은 '마(馬)'에는 '크다', '밝다'라는 뜻이 있어서 '백제, 마한의 큰 강'이라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부소산이나 부여읍에서 조망하면 반달 모양으로 부여읍을 안고 흐르는데, 낙화암·백화정·고란사·조룡대(釣龍臺)·수북정·반월정·신동엽 시비 등과 같은 유적들이 강물과 잘 어울려 있다.
이처럼 백마강 주변에는, 봄날의 산벚꽃처럼, 유서 깊은 문화유산이 곳곳에 산재함에도 망국의 한이 서려 있는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何處高臺何處樓 暮山千疊水西流龍亡花落他時事 漫有浮生不盡愁.(하처고대하처루 모산천첩수서류용망화락타시사 만유부생부진수)높은 대 어디메뇨 누각은 또 어디인고산은 저물어 겹겹이요 강물은 흘러 서쪽으로 향하는데(조룡대)용은 죽고 (낙화암)꽃 진 게 어느 때 일이던가부질없고 뜬구름 같은 인생, 시름이 다함 없구나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문장가로 유명한 백주 이명한(白洲 李明漢, 1595~1645)은 '백마강'을 이렇게 읊었다. 정파로는 서인이었지만 경계를 넘나들며 당대 사상가들과 교류하였다고 한다. 병자호란 당시 척화파 입장을 고수하여 한강변 삼전도에 마련된 수항단(受降檀)에서 인조가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갖춰 굴욕적인 항복을 한 이후 소현세자, 봉림대군과 함께 심양에 볼모로 갔던 인물이다. 벼슬은 이조판서, 예조판서에 이어 대제학에 올랐다.
1,400년 전 백제 패망에 이어 400년 전 자신이 직접 겪은 병자호란의 참상과 서글픔을 읊은 이 시에서도 오늘날 백마강, 낙화암, 조룡대 등과 같은 사적들의 면모를 얼핏 살필 수 있다.
부소산성 낙화암에 자리한 백화정
그중 백화정은 부소산성 북쪽 험준한 바위인 낙화암 위에 1929년에 세운 누정이다. 백마강의 강줄기를 조망할 수 있는 대표적인 명소로서 모자람이 없다. 백제 패망 당시 최후를 맞이한 궁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임철호(林哲鎬) 등이 주도하여 부여에 거주하는 유림과 선비들이 참여한 부풍시사(扶風詩社)에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임철호라는 부여면장 출신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바 있는 인물이다.
이른바 '낙화암 3천 궁녀 투신설'은 『삼국사기』 등 정사의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다. "궁녀들이 부여 북쪽의 큰 바위에 올라가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으므로, 그 바위를 타사암(墮死巖)이라 불렀다"는 『삼국유사』(제1권 기이편 태종춘추공조)의 단순 기록이 있을 뿐이다. 조선시대 궁궐 운영의 실무와 시무를 맡아보던 궁녀 인원이 약 600명이었다고 하니, 사회적 규모가 훨씬 적었던 사비성의 경우 경제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17세기 민암(1636~1694)이라는 인물의 시 '부여회고(扶餘懷古)'에 "삼천 궁녀가 꽃처럼 떨어졌다(三千宮女落如花)"는 표현이 절대적으로 작용한 듯하다. 더불어 일제에 의한 비하적 왜곡이 작용하였다고 보여진다. 백화정이 건립된 시기가 일제 강점기였다는 점에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풍류적, 문학적 표현들이 기정사실로 둔갑하는 잘못이 지속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무왕의 탄생 설화 궁남지
부여 인심은 순하다. 언어와 몸짓이 배타적이지 않고, 이방의 여행객을 맞는 태도가 융숭하다. 그러니 여행자로서는 고향과 같은 안온함을 느낀다. 정림사지에서 우연히 만난 중년 남성의 친절한 정보 제공, 신동엽문학관 문학지기의 환대와 요구한 자료의 신속한 제공, 부여초등학교 자원봉사자의 동행 안내, 연잎밥 식당 주인에게서 느낀 고객 우선주의, 이 모두가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답사 여행에서 목적한 유물과 유적을 확인한 것도 쾌감이지만 가슴 따듯한 사람들을 만나서 더 유쾌할 때가 있는 법이다.
부여 인심이 그러할 진데, 인심을 결정하는 환경적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도심을 안고 흐르는 백마강과 숲이 잘 어우러진 야트막한 산성 그리고 그것에 어울려 사는 사람들, 왜 아니 그렇겠는가. 거기에다 도시의 중심부에 궁남지가 있어서 더욱 그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부여 사람들은 참 복도 많지! 이번 부여 여행 중 틈틈이 궁남지에서 유유자적했던 시간은 봄날의 정취를 한껏 누릴 수 있는 '부춘(富春)의 시간'이었다.
무왕의 탄생 설화가 담긴 궁남지와 포룡정
궁남지, 정확한 근거는 아니지만, 아마도 현존하는 연못 중 가장 오래된 인공 연못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남지(南池)'의 터는 남아 있었지만 오랜 세월 늪지 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65년부터 약 2년간 대대적인 준설과 정비를 통해 복원을 시작하였다. 1971년에는 연못 가운데 포룡정(抱龍亭)을 중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어 1990년부터 주변 약 10만 평에 연꽃단지를 조성하여 더욱 활기 넘치는 장소가 되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연꽃, 연잎, 연뿌리는 부여의 대표 특산물이다.
연못 가운데 조성된 포룡정은 무왕의 어머니가 용을 품어서 무왕을 낳았다는 설화와 관련이 있다. 2가지 이야기가 전하는데, 먼저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녕왕 35년 기사에 "궁성 남쪽에 못을 파고 20여 리 밖에서 물을 끌어들였는데, 못 언덕에는 수양버들을 심고 못 가운데에는 방장선산(方丈仙山)을 상징하는 섬을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방장선산은 신선들이 거처하는 3가지 산 중 하나로, 신선사상을 바탕으로 한 다분히 설화적인 내용이다.
『삼국유사』 권2, <기이편> '무왕' 조 기록에도 "제30대 무왕의 이름은 장(璋)이다. 그의 어머니는 과부로 서울 남지(南池) 가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못의 용과 소통하여 아들을 낳았다. (중략) 어릴 때 이름은 서동(薯童)이다. 재기와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 어려웠으며, 항상 마(薯)를 캐어 팔아서 생업을 삼았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를 서동이라 불렀다."라고 했다.
미천한 신분인 무왕이 용의 후예라는 점을 부각시켜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이라 하겠다. 출생 이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신라 공주 선화공주와 어찌어찌했다네 하는 얘기, 그 진위 여부 등은 길어질 것 같아서 줄이겠다.
왕의 별궁 정원이자 백제 조경 기술이 낳은 대표적 정원, 궁남지의 조경 기술은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정원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사실관계를 확인하려면 일본 정원 양식과 백제 정원 양식을 비교 고찰할 필요가 있겠다.
신동엽 시인이 태어나서 결혼하여 1950년 후반까지 살았던 생가
#시골집 시인을 찾는 대통령
4월의 시인을 소개하려니 그의 작품 하나를 더 소개하겠다. 신동엽과 나와의 인연이 처음 시작된 시, 지리적으로는 스칸디나비아반도와 한반도를 오가야 해서 제법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할, '산문시 1'이다.
나의 세계로 시인이 먼저 들어온 것이 아니라, 이 한 편의 시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시인 신동엽'이란, 커다란 세상을 얻게 된 것이다. 대학 입학 후 간간이 시위에 참여하면서도 스무 번은 더 읽었던 작품이다. 시에 그려진 사회상이 내가 꿈꾸던 이상향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짧은 지면에 비해 지나친 비중이지만 전문을 그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라일락 향기가 날리는 4월'은 이런 시를 음미해도 좋은 계절일 테니까.
"스칸디나비아라던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데거 러셀 헤밍웨이 장자(莊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트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 내는 미사일기지도 탱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 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 소리 춤 사색(思索)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월간문학』·1968년 11월 창간호, 강형철, 『신동엽 시전집』(창비)에서 전문 인용)"
백마강의 대표 나루인 구드래 나루를 가장 조망할 수 있는 수북정
신동엽이 이 작품을 썼던 1968년의 상황이 현재 한반도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더라는 사실이 놀랍다. 시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스칸디나비아 대통령은 올로프 팔메(Sven Olof Joachim Palme, 1927~1986) 스웨덴 총리이다. 개인 시간에는 국가 기관인 경호원의 도움 없이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소 강대국 어느 쪽에 기대지 않고 제3세계 국가들과 연대하였으며, 오직 스웨덴 국민들의 삶과 미래에 대해 더 관심이 많았다.
1960년대 후반, 스칸디나비아에서 들려온 이런 소식은 신동엽에게 매우 특별한 자극이었던 모양이다. 특히 올로프 팔메는 오늘날 스웨덴 복지 사회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부의 가치 재분배'는 정책의 근간이었다. 이 밖에도 이란·이라크 전쟁 종결 노력, 핵확산 방지, 아프리카와 팔레스타인 문제 해소 등 국제 문제에 대해서도 발 벗고 나섰다. 젊은 날 스웨덴 학생 노조 의장으로 활약했다는 점, 쿠바를 방문한 첫 서방 국가 지도자였다는 점도 특별하다.
그러나 그의 나이 56세였던 1986년,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고 난 후 경호원 없이 집으로 돌아가다가 암살자의 총탄에 맞아 거리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그의 행적을 일일이 소개할 수 없으나, 시간이 나시거든 그가 시도했던 인본주의 정책, 인류 공생을 위한 제안들을 한번은 살펴보시라.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 문제 해법을 구하는데 적지 않은 영감을 얻으리라 믿는다.
이번 '상' 편에서는 겨우 시 3편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감하고 말았다. '하' 편에서는 부여에 가보아야만 느낄 수 있는 백제의 미학, 그리고 부여 교육 문제 일부를 다루도록 하겠다.
선명완 담쟁이대안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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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에는 부여
껍데기는 가라! 읊조리거나 외치거나, 4월이면 길을 걷다가도 떠오르는 이 시는 1967년 『현대문학』 1월호에 발표되었다가, 신구문화사에서 발행한 『52인 시집』(1967년 1월)에 재수록되었다. 하지만 이보다 먼저 1964년 『시단(詩壇)』 제6집에 이미 발표되었던 것이었다. 습작시 형태 원작 바다이야기게임사이트 은 4연 "한라에서 백두까지~쇠붙이는 가라"가 3연과 뒤바뀐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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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신동엽의 작품은 자신이 나고 자란 백 바다이야기예시야마토게임 제 지역의 역사와 동학농민혁명 그리고 60년대 암울한 현실이 더해진 역사적 소재가 다분하다. 거기에 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취재하면서 획득한 우리의 서정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시대를 건너 울림의 깊이가 있다. 보편적으로 그의 작품에서 이렇게 현실성과 역사성이 두드러진 것은 아마도 단국대 사학과 시절 역사 전공 경험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 추정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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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白馬江)
부여 여행을 계획하신다면 백제사 기본서 정도를 다시 펴보시길 권한다. 계백로, 성왕로, 사비로, 석탑로, 궁남로, 정림로, 서동로, 나성로, 의열로, 백강로, 부소로, 게다가 신동엽길까지, 얼핏 나열해도 부여의 중심 도로명이 이렇다. 그러니 부여 역사를 외면하면 되치기로 부여가 여행자를 외면하는 낭패를 당할 것이다. 여행의 목적은 개별적일지라도, 성공적인 여행을 위해서는 여행지에 대한 사전 학습과 대강의 설계가 만인에게 공통 과제라는 점을 밝혀둔다.
금강의 발원지는 전북 장수군 신무산자락 해발 780m 지점 뜬봉샘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갓 솟아난 씨앗 샘물이 고을고을을 돌고 지날 때마다 다른 샛강 물줄기와 합류하고 연대하면서 자연스럽게 힘을 더해 갈 것이다. 진안, 무주, 영동을 지나 공주를 거쳐 부여로 접어들었다가 강경으로 흘러 군산과 서천 장항 하류에서 몸을 풀며 서해와 만나는 물줄기가 금강이다.
역사적으로는 백강 전투(663년 8월 백제·왜 연합군과 나당연합군 간 전투), 기벌포 전투(676년 11월 나당전쟁),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1894년 11월) 때의 곰나루 등의 배경지이기도 하다.
백마강은 금강의 중하류에 해당하는 부여군 규암면 호암리에서 세도면 반조원리까지 약 16km 구간을 특별히 부르는 이름이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지점을 '두물리', 남한강이 여주를 지날 때 '여(주)강', 탐진강이 장흥읍 구간을 지날 때 '예양강'이라고 달리 부르듯, 강줄기가 지나는 지역명과 연계하여 붙인 구간 지명 또는 미시 지명이 따로 있는 경우가 있다. 지역성이 반영된 애칭 정도이다.
'백(白)' 혹은 '마(馬)'에는 '크다', '밝다'라는 뜻이 있어서 '백제, 마한의 큰 강'이라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부소산이나 부여읍에서 조망하면 반달 모양으로 부여읍을 안고 흐르는데, 낙화암·백화정·고란사·조룡대(釣龍臺)·수북정·반월정·신동엽 시비 등과 같은 유적들이 강물과 잘 어울려 있다.
이처럼 백마강 주변에는, 봄날의 산벚꽃처럼, 유서 깊은 문화유산이 곳곳에 산재함에도 망국의 한이 서려 있는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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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문장가로 유명한 백주 이명한(白洲 李明漢, 1595~1645)은 '백마강'을 이렇게 읊었다. 정파로는 서인이었지만 경계를 넘나들며 당대 사상가들과 교류하였다고 한다. 병자호란 당시 척화파 입장을 고수하여 한강변 삼전도에 마련된 수항단(受降檀)에서 인조가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갖춰 굴욕적인 항복을 한 이후 소현세자, 봉림대군과 함께 심양에 볼모로 갔던 인물이다. 벼슬은 이조판서, 예조판서에 이어 대제학에 올랐다.
1,400년 전 백제 패망에 이어 400년 전 자신이 직접 겪은 병자호란의 참상과 서글픔을 읊은 이 시에서도 오늘날 백마강, 낙화암, 조룡대 등과 같은 사적들의 면모를 얼핏 살필 수 있다.
부소산성 낙화암에 자리한 백화정
그중 백화정은 부소산성 북쪽 험준한 바위인 낙화암 위에 1929년에 세운 누정이다. 백마강의 강줄기를 조망할 수 있는 대표적인 명소로서 모자람이 없다. 백제 패망 당시 최후를 맞이한 궁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임철호(林哲鎬) 등이 주도하여 부여에 거주하는 유림과 선비들이 참여한 부풍시사(扶風詩社)에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임철호라는 부여면장 출신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바 있는 인물이다.
이른바 '낙화암 3천 궁녀 투신설'은 『삼국사기』 등 정사의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다. "궁녀들이 부여 북쪽의 큰 바위에 올라가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으므로, 그 바위를 타사암(墮死巖)이라 불렀다"는 『삼국유사』(제1권 기이편 태종춘추공조)의 단순 기록이 있을 뿐이다. 조선시대 궁궐 운영의 실무와 시무를 맡아보던 궁녀 인원이 약 600명이었다고 하니, 사회적 규모가 훨씬 적었던 사비성의 경우 경제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17세기 민암(1636~1694)이라는 인물의 시 '부여회고(扶餘懷古)'에 "삼천 궁녀가 꽃처럼 떨어졌다(三千宮女落如花)"는 표현이 절대적으로 작용한 듯하다. 더불어 일제에 의한 비하적 왜곡이 작용하였다고 보여진다. 백화정이 건립된 시기가 일제 강점기였다는 점에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풍류적, 문학적 표현들이 기정사실로 둔갑하는 잘못이 지속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무왕의 탄생 설화 궁남지
부여 인심은 순하다. 언어와 몸짓이 배타적이지 않고, 이방의 여행객을 맞는 태도가 융숭하다. 그러니 여행자로서는 고향과 같은 안온함을 느낀다. 정림사지에서 우연히 만난 중년 남성의 친절한 정보 제공, 신동엽문학관 문학지기의 환대와 요구한 자료의 신속한 제공, 부여초등학교 자원봉사자의 동행 안내, 연잎밥 식당 주인에게서 느낀 고객 우선주의, 이 모두가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답사 여행에서 목적한 유물과 유적을 확인한 것도 쾌감이지만 가슴 따듯한 사람들을 만나서 더 유쾌할 때가 있는 법이다.
부여 인심이 그러할 진데, 인심을 결정하는 환경적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도심을 안고 흐르는 백마강과 숲이 잘 어우러진 야트막한 산성 그리고 그것에 어울려 사는 사람들, 왜 아니 그렇겠는가. 거기에다 도시의 중심부에 궁남지가 있어서 더욱 그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부여 사람들은 참 복도 많지! 이번 부여 여행 중 틈틈이 궁남지에서 유유자적했던 시간은 봄날의 정취를 한껏 누릴 수 있는 '부춘(富春)의 시간'이었다.
무왕의 탄생 설화가 담긴 궁남지와 포룡정
궁남지, 정확한 근거는 아니지만, 아마도 현존하는 연못 중 가장 오래된 인공 연못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남지(南池)'의 터는 남아 있었지만 오랜 세월 늪지 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65년부터 약 2년간 대대적인 준설과 정비를 통해 복원을 시작하였다. 1971년에는 연못 가운데 포룡정(抱龍亭)을 중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어 1990년부터 주변 약 10만 평에 연꽃단지를 조성하여 더욱 활기 넘치는 장소가 되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연꽃, 연잎, 연뿌리는 부여의 대표 특산물이다.
연못 가운데 조성된 포룡정은 무왕의 어머니가 용을 품어서 무왕을 낳았다는 설화와 관련이 있다. 2가지 이야기가 전하는데, 먼저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녕왕 35년 기사에 "궁성 남쪽에 못을 파고 20여 리 밖에서 물을 끌어들였는데, 못 언덕에는 수양버들을 심고 못 가운데에는 방장선산(方丈仙山)을 상징하는 섬을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방장선산은 신선들이 거처하는 3가지 산 중 하나로, 신선사상을 바탕으로 한 다분히 설화적인 내용이다.
『삼국유사』 권2, <기이편> '무왕' 조 기록에도 "제30대 무왕의 이름은 장(璋)이다. 그의 어머니는 과부로 서울 남지(南池) 가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못의 용과 소통하여 아들을 낳았다. (중략) 어릴 때 이름은 서동(薯童)이다. 재기와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 어려웠으며, 항상 마(薯)를 캐어 팔아서 생업을 삼았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를 서동이라 불렀다."라고 했다.
미천한 신분인 무왕이 용의 후예라는 점을 부각시켜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이라 하겠다. 출생 이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신라 공주 선화공주와 어찌어찌했다네 하는 얘기, 그 진위 여부 등은 길어질 것 같아서 줄이겠다.
왕의 별궁 정원이자 백제 조경 기술이 낳은 대표적 정원, 궁남지의 조경 기술은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정원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사실관계를 확인하려면 일본 정원 양식과 백제 정원 양식을 비교 고찰할 필요가 있겠다.
신동엽 시인이 태어나서 결혼하여 1950년 후반까지 살았던 생가
#시골집 시인을 찾는 대통령
4월의 시인을 소개하려니 그의 작품 하나를 더 소개하겠다. 신동엽과 나와의 인연이 처음 시작된 시, 지리적으로는 스칸디나비아반도와 한반도를 오가야 해서 제법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할, '산문시 1'이다.
나의 세계로 시인이 먼저 들어온 것이 아니라, 이 한 편의 시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시인 신동엽'이란, 커다란 세상을 얻게 된 것이다. 대학 입학 후 간간이 시위에 참여하면서도 스무 번은 더 읽었던 작품이다. 시에 그려진 사회상이 내가 꿈꾸던 이상향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짧은 지면에 비해 지나친 비중이지만 전문을 그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라일락 향기가 날리는 4월'은 이런 시를 음미해도 좋은 계절일 테니까.
"스칸디나비아라던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데거 러셀 헤밍웨이 장자(莊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트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 내는 미사일기지도 탱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 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 소리 춤 사색(思索)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월간문학』·1968년 11월 창간호, 강형철, 『신동엽 시전집』(창비)에서 전문 인용)"
백마강의 대표 나루인 구드래 나루를 가장 조망할 수 있는 수북정
신동엽이 이 작품을 썼던 1968년의 상황이 현재 한반도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더라는 사실이 놀랍다. 시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스칸디나비아 대통령은 올로프 팔메(Sven Olof Joachim Palme, 1927~1986) 스웨덴 총리이다. 개인 시간에는 국가 기관인 경호원의 도움 없이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소 강대국 어느 쪽에 기대지 않고 제3세계 국가들과 연대하였으며, 오직 스웨덴 국민들의 삶과 미래에 대해 더 관심이 많았다.
1960년대 후반, 스칸디나비아에서 들려온 이런 소식은 신동엽에게 매우 특별한 자극이었던 모양이다. 특히 올로프 팔메는 오늘날 스웨덴 복지 사회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부의 가치 재분배'는 정책의 근간이었다. 이 밖에도 이란·이라크 전쟁 종결 노력, 핵확산 방지, 아프리카와 팔레스타인 문제 해소 등 국제 문제에 대해서도 발 벗고 나섰다. 젊은 날 스웨덴 학생 노조 의장으로 활약했다는 점, 쿠바를 방문한 첫 서방 국가 지도자였다는 점도 특별하다.
그러나 그의 나이 56세였던 1986년,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고 난 후 경호원 없이 집으로 돌아가다가 암살자의 총탄에 맞아 거리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그의 행적을 일일이 소개할 수 없으나, 시간이 나시거든 그가 시도했던 인본주의 정책, 인류 공생을 위한 제안들을 한번은 살펴보시라.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 문제 해법을 구하는데 적지 않은 영감을 얻으리라 믿는다.
이번 '상' 편에서는 겨우 시 3편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감하고 말았다. '하' 편에서는 부여에 가보아야만 느낄 수 있는 백제의 미학, 그리고 부여 교육 문제 일부를 다루도록 하겠다.
선명완 담쟁이대안교육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