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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중 부상을 입고 남겨져 포로가 됐음에도 사망자로 분류돼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제3-1 묘역에 세워졌던 유종철 일병의 묘는 포로 석방과 함께 파묘된 뒤 이렇게 51년간 비워진 상태로 있었다. 지난 2024년 4월 유종철씨가 세상을 떠난 뒤 보훈부는 논란 끝에 유씨의 유골을 이곳에 안장했다. 고경태 기자
포로는 없어야 했다. 드러난 포로는 월북자나 사망자로 조작됐다. 남은 가족의 삶은 파탄 났고, 국립현충원에 세워졌던 가짜 무덤은 파묘됐다. 1960~1970년대 베트남전에 파병됐다가 포로가 된 이들의 이야기다.
국가인권 릴게임 위원회(인권위)는 13일 열리는 전원위원회에서 ‘우크라이나 북한군 포로의 생명·신체 및 정신건강 보호와 대한민국 입국을 위한 인도적 조치 권고의 건’을 재상정해 심의한다. 지난달 23일 전원위 첫 심의 때 논란 끝에 결론을 내지 못했지만, 대한민국 국가인권기구에서 제3국에 억류된 북한군 포로의 생사 문제가 안건으로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역사적이다. 국군 포 게임몰 로의 존재를 부인하고,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인권침해를 가했던 대한민국의 흑역사를 떠올리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과 참전 소식은 2024년 10월부터 세상에 알려졌다. 북한의 대규모 전투병력 파병은 초유의 일이라, 초기에는 가짜뉴스 취급을 당했다. 해외파병의 역사는 남쪽이 먼저다. 60여년 전 미국의 부름에 응답해, 베트 온라인릴게임 남의 전장에 32만명의 대군을 보냈다. 북한군이 우크라이나에 보낸 것으로 알려진 1만여명의 30배 넘는 규모다. 그곳에서 ‘적’에 생포된 우리 포로들이 이후 정부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는,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안학수 하사(왼쪽)가 납치되기 두 달 전인 1966 게임몰 년 7월경 근무지인 붕따우의 제1이동외과병원 앞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안용수 제공
비둘기부대 예하 제1이동외과병원 전화교환병이었던 안학수 하사(1943년생)는 1966년 9월 부대가 있던 붕따우에서 사이공(호찌민)으로 공무 출장을 나갔다가 베트콩(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에 납치된 뒤 북한으로 넘겨졌 야마토연타 다. 맹호부대 기갑 8중대 소속으로 1972년 4월 안케패스 전투에 참전했던 유종철 일병(1950년생)은 전투 중 부상을 입고 남겨져 포로수용소에 갇혔다. 군 당국은 이들의 실종 사실을 은폐했다. 몇 달 뒤 평양방송이 안학수가 월북했다며 대남선전에 이용하자 안 하사는 탈영자·월북자로 둔갑됐다. 유종철 일병은 주검이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3묘역에 묘비부터 세웠고, 이듬해 북베트남이 미군 포로와 함께 석방하자 파묘됐다. 유종철의 호적 초본에는 ‘부활’이라는 황당한 글자가 새겨졌다.
이들은 포로였음에도 생전에 포로로 인정 받지 못했다. 안학수 하사의 부모와 4형제는 졸지에 빨갱이 가족으로 몰려 직장에서 쫓겨나는 등 연좌제의 덫에 걸려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안 하사는 1975년 탈북을 시도하다 체포돼 총살형을 당했다. 유종철 일병은 살아 돌아왔지만, 평생 울화에 시달리며 폐인처럼 지내다가 2024년 4월 세상을 떠났다. 안학수 하사는 납치된 지 43년 만인 2009년에서야 통일부와 국방부로부터 각각 납북자와 베트남전 국군포로 추정자로 인정받았다. 동생 안용수가 수십년간 정부에 민원을 제기하고 외교부 기밀문서를 토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해 진실을 밝힌 덕분이다. 유종철은 끝내 포로 피해 인정과 이에 상응하는 예우를 받지 못했다. 죽어서도 보훈부 내부의 논란을 거친 뒤에야 간신히 파묘됐던 본인 자리에 묻혔다.
지난해 10월 우크라이나 서부지역 포로수용소에서 김영미 국제분쟁 전문피디의 인터뷰에 응한 북한군 포로 리아무개(가운데), 백아무개(오른쪽)씨가 우크라이나의 탈북자가 준비한 음식을 먹고 있다. 다큐엔드뉴스코리아 제공
안학수 하사와 유종철 일병은 베트남전 당시 구조를 요청할 통로가 전혀 없었다. 캄캄한 군사독재 시대였다. 2026년 북한으로의 송환을 죽음의 길로 여기며 떨고 있는 북한군 포로 리아무개(26)·백아무개(21)씨는 다행히도 한 줄기 빛을 만났다. 김영미 국제분쟁 전문피디(PD)와 인터뷰에서 ‘한국행’ 의사를 간절하게 밝혔고, 이는 문화방송 피디수첩을 통해 전파를 탔다. 외교부도 “한국행 요청 시 전원 수용”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게다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신장으로 50년 전에는 없던 인권위도 존재한다.
하지만 지난달 23일 인권위 전원위에서 북한군 포로의 인도적 조처를 정부부처에 권고하는 안건은 쉽게 처리되지 못했다. 위원들 중 절반 가까이가 “포로들의 한국행 의사와 정부 협의 과정에 대한 확인절차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 지명을 받고 임명된 오완호 위원은 이 안건의 최초 제안자였지만, 막상 보수 성향의 위원들에 의해 안건이 발의되자 “좀 더 기다려보자”며 미뤘다. 위원들 의견이 외부에 알려진 성향대로 갈린 것처럼 비쳤다. 북한군 포로 문제가 정파적으로 다뤄지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나온 배경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제6차 전원위원회가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열리고 있다. 김정효 선임기자 hyopd@hani.co.kr
오는 13일 열릴 전원위에서도 이런 논란이 재연될지 주목된다. 박석진 열린군대를 위한 시민연대 상임활동가는 한겨레에 “북한군 포로들이 한국에 오면 일부 보수세력에 의해 소비되고 이용될 가능성이 큰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가 원하는 한국행에 힘을 실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 법률대리인단의 실무총괄을 맡았던 김진한 변호사도 “이 문제는 이념이나 정치적 입장, 대북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의 생명을 구조하는 문제다. 외교·정치·정책이 중요하다고 해도 생명이나 인간의 존엄성보다 중할 수 없다. 기본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위기에 처한 포로부터 우선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우크라이나 북한군 포로의 한국행은 50여년 전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베트남전 한국군 포로 문제를 환기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국군 포로를 외면했던 과거사도 정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지난 2024년 11월 안학수 하사와 관련한 ‘베트남 참전 납북군인 및 가족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피해 인정) 결정을 내렸다. 안 하사가 납북되었음을 확인하고도 2009년에야 납북피해자로 인정한 점과 수십 년간 수사정보기관이 그 가족을 관리·감시한 점 등에 대해 국가의 사과를 권고했다. 자국의 국군 포로와 그 가족을 절망케 했던 대한민국은 아직 사과하지 않았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포로는 없어야 했다. 드러난 포로는 월북자나 사망자로 조작됐다. 남은 가족의 삶은 파탄 났고, 국립현충원에 세워졌던 가짜 무덤은 파묘됐다. 1960~1970년대 베트남전에 파병됐다가 포로가 된 이들의 이야기다.
국가인권 릴게임 위원회(인권위)는 13일 열리는 전원위원회에서 ‘우크라이나 북한군 포로의 생명·신체 및 정신건강 보호와 대한민국 입국을 위한 인도적 조치 권고의 건’을 재상정해 심의한다. 지난달 23일 전원위 첫 심의 때 논란 끝에 결론을 내지 못했지만, 대한민국 국가인권기구에서 제3국에 억류된 북한군 포로의 생사 문제가 안건으로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역사적이다. 국군 포 게임몰 로의 존재를 부인하고,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인권침해를 가했던 대한민국의 흑역사를 떠올리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과 참전 소식은 2024년 10월부터 세상에 알려졌다. 북한의 대규모 전투병력 파병은 초유의 일이라, 초기에는 가짜뉴스 취급을 당했다. 해외파병의 역사는 남쪽이 먼저다. 60여년 전 미국의 부름에 응답해, 베트 온라인릴게임 남의 전장에 32만명의 대군을 보냈다. 북한군이 우크라이나에 보낸 것으로 알려진 1만여명의 30배 넘는 규모다. 그곳에서 ‘적’에 생포된 우리 포로들이 이후 정부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는,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안학수 하사(왼쪽)가 납치되기 두 달 전인 1966 게임몰 년 7월경 근무지인 붕따우의 제1이동외과병원 앞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안용수 제공
비둘기부대 예하 제1이동외과병원 전화교환병이었던 안학수 하사(1943년생)는 1966년 9월 부대가 있던 붕따우에서 사이공(호찌민)으로 공무 출장을 나갔다가 베트콩(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에 납치된 뒤 북한으로 넘겨졌 야마토연타 다. 맹호부대 기갑 8중대 소속으로 1972년 4월 안케패스 전투에 참전했던 유종철 일병(1950년생)은 전투 중 부상을 입고 남겨져 포로수용소에 갇혔다. 군 당국은 이들의 실종 사실을 은폐했다. 몇 달 뒤 평양방송이 안학수가 월북했다며 대남선전에 이용하자 안 하사는 탈영자·월북자로 둔갑됐다. 유종철 일병은 주검이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3묘역에 묘비부터 세웠고, 이듬해 북베트남이 미군 포로와 함께 석방하자 파묘됐다. 유종철의 호적 초본에는 ‘부활’이라는 황당한 글자가 새겨졌다.
이들은 포로였음에도 생전에 포로로 인정 받지 못했다. 안학수 하사의 부모와 4형제는 졸지에 빨갱이 가족으로 몰려 직장에서 쫓겨나는 등 연좌제의 덫에 걸려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안 하사는 1975년 탈북을 시도하다 체포돼 총살형을 당했다. 유종철 일병은 살아 돌아왔지만, 평생 울화에 시달리며 폐인처럼 지내다가 2024년 4월 세상을 떠났다. 안학수 하사는 납치된 지 43년 만인 2009년에서야 통일부와 국방부로부터 각각 납북자와 베트남전 국군포로 추정자로 인정받았다. 동생 안용수가 수십년간 정부에 민원을 제기하고 외교부 기밀문서를 토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해 진실을 밝힌 덕분이다. 유종철은 끝내 포로 피해 인정과 이에 상응하는 예우를 받지 못했다. 죽어서도 보훈부 내부의 논란을 거친 뒤에야 간신히 파묘됐던 본인 자리에 묻혔다.
지난해 10월 우크라이나 서부지역 포로수용소에서 김영미 국제분쟁 전문피디의 인터뷰에 응한 북한군 포로 리아무개(가운데), 백아무개(오른쪽)씨가 우크라이나의 탈북자가 준비한 음식을 먹고 있다. 다큐엔드뉴스코리아 제공
안학수 하사와 유종철 일병은 베트남전 당시 구조를 요청할 통로가 전혀 없었다. 캄캄한 군사독재 시대였다. 2026년 북한으로의 송환을 죽음의 길로 여기며 떨고 있는 북한군 포로 리아무개(26)·백아무개(21)씨는 다행히도 한 줄기 빛을 만났다. 김영미 국제분쟁 전문피디(PD)와 인터뷰에서 ‘한국행’ 의사를 간절하게 밝혔고, 이는 문화방송 피디수첩을 통해 전파를 탔다. 외교부도 “한국행 요청 시 전원 수용”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게다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신장으로 50년 전에는 없던 인권위도 존재한다.
하지만 지난달 23일 인권위 전원위에서 북한군 포로의 인도적 조처를 정부부처에 권고하는 안건은 쉽게 처리되지 못했다. 위원들 중 절반 가까이가 “포로들의 한국행 의사와 정부 협의 과정에 대한 확인절차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 지명을 받고 임명된 오완호 위원은 이 안건의 최초 제안자였지만, 막상 보수 성향의 위원들에 의해 안건이 발의되자 “좀 더 기다려보자”며 미뤘다. 위원들 의견이 외부에 알려진 성향대로 갈린 것처럼 비쳤다. 북한군 포로 문제가 정파적으로 다뤄지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나온 배경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제6차 전원위원회가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열리고 있다. 김정효 선임기자 hyopd@hani.co.kr
오는 13일 열릴 전원위에서도 이런 논란이 재연될지 주목된다. 박석진 열린군대를 위한 시민연대 상임활동가는 한겨레에 “북한군 포로들이 한국에 오면 일부 보수세력에 의해 소비되고 이용될 가능성이 큰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가 원하는 한국행에 힘을 실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 법률대리인단의 실무총괄을 맡았던 김진한 변호사도 “이 문제는 이념이나 정치적 입장, 대북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의 생명을 구조하는 문제다. 외교·정치·정책이 중요하다고 해도 생명이나 인간의 존엄성보다 중할 수 없다. 기본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위기에 처한 포로부터 우선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우크라이나 북한군 포로의 한국행은 50여년 전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베트남전 한국군 포로 문제를 환기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국군 포로를 외면했던 과거사도 정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지난 2024년 11월 안학수 하사와 관련한 ‘베트남 참전 납북군인 및 가족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피해 인정) 결정을 내렸다. 안 하사가 납북되었음을 확인하고도 2009년에야 납북피해자로 인정한 점과 수십 년간 수사정보기관이 그 가족을 관리·감시한 점 등에 대해 국가의 사과를 권고했다. 자국의 국군 포로와 그 가족을 절망케 했던 대한민국은 아직 사과하지 않았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