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스러운 척산온천 외관은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관광 자원이다. 최갑수 제공


반백년 된 강원도 1호 온천
호텔·찜질방·산책로 갖춰
가열하지 않은 53℃ ‘생수’
온천수의 귀한 성분 그대로
눈을 뜨면 언제나 뭔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마치 인생은 살아가는 게 아니라 끝내야 할 일들을 처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주도 그랬다. 바빴고 또 바빴다. ‘아, 힘들다’ 하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늦 릴게임바다이야기 은 밤, 캔맥주를 마시고 죽은 듯 쓰러져 잠들면 어느새 아침이었다. 내가 지난해보다 조금은 어른이 되었다는 걸 느낄 때는 어리광을 부리지 않을 때다. 언제부터인가 ‘쉬운 일은 없다. 어떤 일이든 그것만의 애로사항이 있고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힘들 때마다 ‘어리광 같은 건 부리지 말자’며 주먹을 살짝 쥔다. 좀 이상한 말처럼 릴게임사이트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 않는다. 열심히 해야 하는 날도 있고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하는 날도 있다. 하지만 쉬어가는 날도 있고, 요령껏 눈치껏 하는 날도 있다. 그것들이 다 모여서 인생이 된다. 당신이 열심히 했다면 열심히 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요령을 부렸다면 분명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며칠 전 바다이야기게임사이트 ‘금강경’을 해설한 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목표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포기하지 말라. 하지만 그 목표는 인생을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어야 한다. 속박이나 기다림이어서는 안 된다.” 인생의 진정한 목표는 현재를 즐기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매일매일 뭔가 특별하고 좋은 일이 생긴다면 좋겠지만, 현실에서 그러기는 쉽지 않다. 사이다쿨 상처받는 말을 듣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예기치 못한 일이 더 자주 일어나는 것, 그게 현실이다.



성기령 기자





속초 해변의 아침 모습. 최갑수 제공 바다신2릴게임


그래서 생각한다. 노을이 진다면, 그 노을을 보기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출 수 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자그마한 음식을 직접 만드는 데서 느끼는 즐거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방금 산 따뜻한 두부의 온기에서 느끼는 행복, 이런 것들이 없다면 우리는 이 무잡한 현실을 어떻게 건너갈 것인가. 지금 나는 속초에 가고 있다. 목적지는 척산온천이다.
반백년 역사의 온천이 있는 속초 가는 길, 빗방울이 날린다. 그런데 오히려 반갑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척산온천이니까. 비나 눈이 오는 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차가운 공기를 마시는 것만큼 완벽한 휴식은 없다. 팔뚝에 닿는 바람이 제법 서늘해진 지금이 온천을 즐기기 가장 좋은 때다.
척산온천은 자주 찾던 곳은 아니었다. 늘 설악산이나 속초 바다로 가는 길목에서 마주치는, 다소 낡은 풍경의 일부로만 기억했다. 하지만 그 낡음 속에 웅숭깊은 역사가 숨어 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다. 옛날 사람들은 이곳을 ‘학사평’이라 불렀다고 한다. 날개를 다친 학 한마리가 이곳 웅덩이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에 몸을 적셔 상처를 치료하고 날아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때문이다. 또한 한겨울에도 땅과 웅덩이가 얼지 않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동네 아낙들이 빨래터로 삼아 언 손을 녹였다고도 한다.



고풍스러운 척산온천 외관은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관광 자원이다. 최갑수 제공





오래전 척산온천 풍경을 담은 흑백사진이 척산온천 실내에 걸려 있다. 최갑수 제공


지금의 척산온천이 있게 된 건 1970년대 초반, 황무지나 다름없던 이곳에서 온천을 찾아낸 끈질긴 집념 덕분이었다. 당시 강원도 1호 온천으로 문을 열었던 작은 온천장은 반세기의 세월을 지나 이제 호텔과 대욕장, 찜질방, 산책로까지 갖춘 든든한 휴식처가 됐다. 입구에 걸린 1970~1980년대의 흑백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척산온천이 품고 있는 그 시간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로비에서 신발을 벗고 계단을 내려가면 대욕장이 나온다. 이른 시간부터 이미 물 위로 김이 자욱하다. 온탕, 미지근한 탕,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노천탕, 아이들이 노는 작은 탕까지, 크기와 온도가 다른 욕조들이 널찍하게 놓여 있다. 탕 안에는 설악산 산행을 마치고 내려온 등산복 차림의 사람과, 온천만 즐기러 온 동네 어르신들, 주말을 맞아 가족여행을 나온 사람들까지 뒤섞여 있다. 뜨끈한 탕에 몸을 푹 담그니 ‘아, 좋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나이가 들면서 잃어버리는 즐거움도 있지만, 이렇게 뜨거운 물에 몸을 맡기는 단순한 행위가 주는 깊은 위로를 알게 되는 즐거움도 있다.
척산온천의 가장 큰 자부심은 바로 ‘물’ 그 자체다. 지하 400m 태고의 지층에서 형성된 온천수를 끌어올리는데, 용출 온도가 무려 53℃에 달한다. 보통의 온천들이 온도가 낮아 물을 데워서 쓰는 것과 달리, 이곳은 오히려 식혀서 내놓아야 할 만큼 뜨겁다. 가열하지 않은 ‘생수’ 그대로이기에 온천수가 품은 귀한 성분들이 날아가지 않고 고스란히 살아 있다.
물빛은 투명하면서도 묘하게 푸른빛이 감돈다. 피부에 닿는 감촉이 비단을 두른 듯 매끄럽다. 이곳 온천수에는 라돈과 불소가 포함되어 있는데, 라돈은 미량일 경우 오히려 면역력을 높인다고 알려져 있다. 강알칼리성이라 묵은 각질을 없애주고 살결을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척산온천 노천탕에서 보이는 설악산 풍경. 최갑수 제공


온천욕만으로 아쉽다면 찜질방으로 향해도 좋다. 쑥, 옥, 게르마늄 등 다양한 테마의 찜질방이 여행의 피로를 풀어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건 대욕장의 노천탕이다. 탕 위로 피어오르는 하얀 김 사이로 멀리 설악산의 능선이 아스라이 보인다. 차가운 공기와 뜨거운 물의 경계에서 눈을 감고 있으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맑게 개는 기분이다.



척산온천에서 온천욕을 하고 나오면 만날 수 있는 3천여그루 금강소나무 숲. 최갑수 제공


온천욕을 마치고 밖에 나오면 3천여그루의 금강소나무가 뿜어내는 짙은 솔향기가 기다린다. 척산온천이 자랑하는 ‘석림원’과 산책로다.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이 길은 맨발로 걸을 수 있도록 잘 조성되어 있다. 젖은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이 상쾌하다. 인생 뭐 있나. 이렇게 좋은 물에 씻고, 좋은 공기 마시며 잠시 쉬어가는 것. 그게 바로 잘 사는 법 아닐까 싶다.
생활은 한가롭게, 일은 쉽고 가볍게, 온천을 마치면 너그러워진다. 자신에게도, 인생에게도. 지금 이 순간 떠나간 애인이 돌아온다면 반갑게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온천을 마치고 나는 본래의 내 모습을 되찾았다.
지금 내 모습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여유롭게 보일 것이다. 나는 생활에서 되도록 한가롭고 느린 모습을 보이려고 한다. 그건 충동이 아닌 루틴의 트랙을 따라 굴러가고 있고, 내 삶이 그만큼 정교하게 조율되어 있다는 뜻이니까. 일은 가볍고 능숙하게 보이게 하려고 한다.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고, 많은 노력과 오랜 꾸준함을 거쳐 능수능란하게 되었다는 뜻이니까. 당신에겐 스윗하고 친절하게 보이려고 한다. 나 자신을 믿고, 당신을 깊이 존중하며,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지금까지 살며 올바른 사랑의 자세는 일상의 여유와 일의 능수능란함에서 나온다는 걸 알게 됐다. 집으로 가는 차 안.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오래된 격언처럼, 나는 삶과 일과 당신을 ‘천천히 서두르며’ 살고, 사랑하리라고 다짐한다. 이게 다 온천 덕분이다.



‘범바위막국수’에서 파는 음식은 푸짐해서 누구나 보는 순간 침을 삼키게 된다. 최갑수 제공





‘범바위막국수’에서 파는 음식은 푸짐해서 누구나 보는 순간 침을 삼키게 된다. 최갑수 제공


B급음식
척산온천 휴양촌에서 차로 5분 거리에 ‘범바위막국수’가 있다. 면을 직접 뽑는 집이다. 자리에 앉으면 갈등이 시작된다. 물? 아니 비빔? 갈등하다가도 언제나 최종 선택은 비빔이다. 비빔막국수와 수육 작은 것 하나를 주문한다. 여기까지 왔으니 수육을 맛보지 않으면 서운하다. 반찬으로 무채와 백김치가 먼저 나온다. 비빔용 육수도 따로 내주신다. 조금 있으니 막국수가 나왔다. 삶은 계란 반쪽과 오이, 무, 김 가루, 깨가 들어가 있다. 면을 비비는데 진한 메밀 향이 코끝으로 훅 끼쳐온다. 벽에 붙은 ‘맛있게 먹는 법’에는 식초와 설탕을 조금 넣으라고 해놓았지만 ‘서울 촌놈’은 메밀 그대로의 맛이 좋다. 수육도 잘 삶았다. 속초라 그런지 명태회무침이 함께 나온다. 수육 위에 명태회무침 한 젓가락을 얹어 먹으니 궁합이 좋다. 아 참, 비빔막국수는 반쯤 먹다가 육수를 부어 먹는 것이 더 맛있게 먹는 요령이다.



시골집을 카페로 꾸민 ‘도평커피’. 최갑수 제공





시골집을 카페로 꾸민 ‘도평커피’. 최갑수 제공


도평커피는 작은 마을 길을 따라 들어가면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는 예쁜 카페다. 옛날 시골집을 카페로 꾸몄다. 넓은 마당 뒤에 하얀색 건물이 서 있다. 커다란 창으로는 시골 마을의 들판이 내다보인다. 도평커피의 시그니처 메뉴는 팥 크림 커피다. 커피에 달콤한 팥 크림을 띄웠다. 커피 아래쪽에는 팥앙금이 있어 커피를 다 마시고 숟가락으로 떠먹으면 된다. 본관 옆 별관 건물에는 프라이빗룸이 있다. 방마다 다른 분위기로 꾸며져 있다. 가족이나 연인이라면 이곳에서 오붓하고 다정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도평커피’의 시그니처 메뉴 ‘팥 크림 커피’. 최갑수 제공





칠성조선소살롱의 외관. 최갑수 제공


나는 지금 칠성조선소살롱에 와 있다. 옛 조선소를 문화공간으로 꾸몄다. 카페도 있고 서점도 들어서 있는데, 지역출판사가 펴낸 책 ‘동쪽의 밥상’을 사서 2층, 바다가 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읽고 있다. 동해안에서 나는 식재료와 음식에 대해 지역 작가가 쓴 글이다. 가자미를 비롯해 다양한 생선과 명태식해 등 맛있는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가 책 속에 가득하다. 읽다 보니 배가 고프다. 생선구이나 먹으러 갈까? 속초에는 맛있는 생선구이 집이 많다는데…. 고등어와 꽁치, 오징어, 열기, 도루묵을 숯불에 구워 한접시 가득 내준다고 한다. 싱싱한 생선을 구웠으니 서울에서 먹는 생선구이와는 차원이 다르겠지.



칠성조선소살롱 안에 있는 서점에 진열돼 있는 ’동쪽의 밥상’. 최갑수 제공


아무튼 오늘은 물 좋은 온천에서 따뜻한 온천욕을 즐기고 막국숫집에서 메밀 향 진한 막국수를 먹었다. ‘인생에서 이런 순간을 몇번이나 만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건 언제나 여행을 떠나와서다. 그러니 여행은 언제나 옳다. 지금 내가 인생의 가장 좋은 순간을 살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니까 말이다. 아 참, 생선구이 집은 지금까지 간 곳 중에 ‘88생선구이’가 가장 맛있었다.



88생선구이의 음식. 최갑수 제공


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