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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젖줄, 그 푸른 시작점
태백 검룡소
태백 여행의 서막은 검룡소에서 열린다. 장장 514킬로미터를 달려 서해로 향하는 한강의 긴 여정이 바로 이 작은 샘에서 시작된다. 우리 역사가 한강을 젖줄 삼아 흘러왔다면, 검룡소는 그 거대한 서사의 첫 문장을 적어 내려간 시발점인 셈이다.
발원지라고 해서 험준한 산세를 각오할 필요는 없다. 주차장에서 비포장길을 따라 20분 정도 느릿하게 걷다 보면 닿을 수 있는 바다이야기꽁머니 다정한 길이다. 피나무와 물푸레나무가 터널을 이룬 이 길은 아이의 손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맑은 계곡물 소리가 들려 지루함을 덜어준다.
검룡소는 바닥의 조약돌까지 선명하게 보일 만큼 투명하다. 하루에 수천 톤의 지하수가 석회 암반을 뚫고 솟구치는데, 사계절 내내 섭씨 9도 안팎의 온도를 유지한다. 주변 바 릴게임가입머니 위에는 살얼음이 얼어 있지만 정작 물에는 얼음이 없다. 이끼도 푸른색을 유지하고 있다. 상류의 제당궁샘과 고목나무샘 등에서 스며든 물이 지하에서 모여 이곳으로 솟아난다고 전해진다.
검룡소
검룡소 검증완료릴게임 아래쪽에는 폭 1~2미터의 암반을 따라 20미터가량 흐르는 와폭이 형성되어 있다. ‘용틀임 폭포’로 불리는데, 용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옛날 서해의 이무기가 용이 되려고 한강을 따라 올라와 검룡소에 도착했다. 암반을 오르기 위해 몸을 비틀었는데, 지금의 와폭이 바로 그 흔적이라는 이야기다. 층이 깎인 암반을 타고 흐르는 용틀임 폭포를 보고 있노라면, 용 야마토게임 이 되려던 이무기가 몸부림쳤다는 전설이 단순한 옛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검룡소의 물은 골지천, 임계천, 조양강을 지나 정선 가수리에서 동남천과 합쳐져 동강을 만든다. 이후 영월에서 서강과 만나 남한강이 되고, 충주호를 거쳐 양평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해 한강이 완성된다.
놀라운 점은 이 고원에 손오공릴게임 낙동강의 뿌리도 함께 있다는 사실이다. 시내 중심에 위치한 황지연못은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의 발원지다. 『동국여지승람』에도 낙동강의 근원으로 기록되어 있다. 상지, 중지, 하지 3개의 연못으로 구성되며, 상지의 깊은 수굴에서 하루 약 5,000톤의 물이 솟아난다. 연못 둘레는 공원으로 꾸며져 시민 휴게공간이 되었다.
바람의 언덕
검룡소에서 내려올 때 보니, 산 정상에서 하얀 풍력발전기가 회전하는 모습이 보인다. 해발 1,304미터 매봉산 ‘바람의 언덕’에 있는 풍력발전단지다. 가파른 경사의 배추밭 정상 능선에 직경 52미터 풍력발전기 8기가 돌고 있다. 발전기 외에 작은 네덜란드풍 풍차 한 기가 서 있어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람의 언덕으로 가기 전 삼수령 피재와 만날 수 있다. 삼수(三水)란 한반도 남부를 적시는 세 강을 말한다. 서해로 흘러드는 한강, 남해로 가는 낙동강, 그리고 동해로 유입되는 오십천이 그것. 이 세 강의 원류가 모두 태백에 있다. 삼수령 피재는 바로 이 세 계곡의 중심이다. 바람의 언덕에 닿기 전 마루턱에 ‘삼수령 피재’라고 쓰인 안내판이 있어 찾기 쉽다. 조그만 주차장과 정자도 마련되어 있다.
옛 광산마을의 기억
(위에서부터) 옛 번성기를 짐작케 하는 건물들, 철암탄광역사촌, 삼방동 벽화마을
태백 주민들은 오랜 세월 탄광에 의지해 살아왔다. 석탄은 태백이 주민들에게 내린 축복이었다. 정부가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을 시행하기 전까지 말이다. 당시엔 약 50개 광산이 운영되었고, 한때 전국 석탄 생산량의 30퍼센트에 달하는 640만 톤을 생산했다. 개도 돈을 물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지역 경기가 활황이었다.
철암은 태백을 상징하는 광산촌이다. 현재는 작은 마을이지만 과거 인구 3만 명에 달하던 큰 마을이었다. 철암에 들어서면 분위기가 쓸쓸하다. 회색빛 낡은 건물과 한산한 거리, 검은 선탄장이 어우러진 풍경은 석탄산업 전성기인 1970~1980년대에 멈춘 듯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마을 중앙의 철암 역두 선탄(채굴된 석탄 중 정탄을 걸러내는 과정)장이다. 70여 년 역사를 간직한 우리나라 석탄산업의 상징물로, 1935년 지어져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국내 최초의 무연탄 선탄 시설이며, 국가등록문화재 제21호로 등재되어 있다. 건물에는 지금도 석탄가루가 쌓여 있다. 이 검은 가루가 한때 ‘검은 노다지’였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명장면, 안성기와 박중훈이 빗속에서 싸우는 씬을 이곳에서 찍었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촬영지 철암 역두 선탄장
선탄장 맞은편에는 4~5층 건물들이 옛 모습 그대로 간판을 걸고 서 있다. 페리카나 치킨, 봉화식당, 한양다방 등이 보이지만 현재는 모두 문을 닫았다. 대신 철암탄광역사촌으로 재구성되어 박물관과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곳곳에 있는 석탄산업 전성기의 탄광촌 풍경과 주민 생활상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의 촬영 장소로, 여행자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남쪽 신설교에서는 철암 천변의 탄광촌 상징인 ‘까치발 건물’ 11채를 관찰할 수 있다. 까치발 건물은 부족한 주거면적을 확보하려고 하천 바닥에 목재나 철재 지지대를 세워 집을 확장한 것이다. 물 위에 기둥을 박아 지은 수상가옥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삼방동 벽화마을
철암역과 광산이 내려다보이는 삼방동 일대는 벽화마을로 변신했다. 주인 떠난 빈집들이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내지만 담벼락에 빛과 색이 깃들고 관광객들이 찾아들면서 마을은 온기를 되찾았다. 태백산도립공원 입구의 태백석탄박물관에서는 국내 석탄산업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동양 최대의 석탄박물관으로, 광물, 화석, 기계장비, 광부 생활용품 등 8,700여 점의 석탄 관련 유물과 모형을 전시 중이다.
아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도시, 태백
태백에는 아이들과 함께 방문할 만한 곳이 많다.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고생대 지층 위에 세워진 고생대 전문 박물관으로 고생대 삼엽충과 두족류, 공룡 화석 및 자체 제작 영상물, 입체 디오라마 등을 전시한다. 박물관 지하 1층에는 화석 발굴 현장, 화석 탁본, 30억 년 지층 파노라마 등 다양한 체험전시실을 운영한다.
(위) 용연동굴 (아래) 용연동굴 종유석
아이와 함께라면 반드시 가볼 곳이 하나 더 있다. 화전동의 용연동굴이다. 국내 동굴 중 가장 높은 해발 920미터 지점에 위치한다. 1억 5000만~3억 년 전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총 길이 1.5킬로미터다. 동굴 안에는 다양한 형태의 석순과 종유석, 석주 등이 가득하다. 형태에 따라 ‘드라큘라 성’, ‘죠스의 두상’, ‘등용문’ 등 흥미로운 이름이 붙어 있다.
동굴 내부에는 폭 50미터, 길이 130미터의 광장과 인공분수, 조명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자연 조형물들과 조화를 이루는 신비로운 경관을 만든다. 천장이 낮은 구간이 있어 키가 큰 사람은 조금 불편할 수 있지만, 바닥은 평평해서 걷기에 무리가 없다. 여름철에도 내부 온도가 10도로 유지되어 시원하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세트장
드라마 ‘태양의 후예’ 세트장에도 가보자. 극중 모우루 중대와 해성병원 의료봉사단이 머물던 우르크 세트를 메디 큐브와 막사 등으로 재현했다. 태백 부대 옆에는 지진으로 붕괴된 우르크 발전소가 있는데, 드라마 속에서 유시진(송중기)이 강소연(송혜교)의 신발 끈을 묶어준 장소로 유명하다.
수많은 실비집과 태백 한우·물닭갈비… 맛있는 태백
태백은 다른 산악도시에 비해 맛집이 많다. 가장 흔한 것이 고깃집이다. 태성실비, 경성실비, 시장실비, 현대실비 등 식당 이름에 대부분 ‘실비’가 포함된 것도 특징이다. 안창살, 치맛살, 제비추리 등으로 구성된 모둠구이도 훌륭하지만 태백에서는 일단 갈빗살을 먹어보자.
태백 주민들은 소갈빗살을 선호한다. 서울에서 먹던 것은 생갈비를 자르고 남은 자투리 갈빗살이지만 여기서는 처음부터 갈빗살 위주로 정형하기 때문에 고기 맛이 뛰어나다.
된장소면
과거 석탄을 캐던 지역답게 연탄불로 고기를 구워 불향이 배어 고소한 맛이 더욱 진하다. 태백산 고원에서 약초를 먹고 자란 태백한우는 육질이 부드럽고 육즙이 풍부하다. 뜨거운 연탄불에 된장국이 끓기 시작하면 소면을 넣어 먹는데, 된장국에 말아 먹는 소면 맛도 별미다.
물닭갈비도 별미다. 볶음식으로 유명한 춘천닭갈비와 달리 여러 식재료를 쇠판에 넣고 육수를 부어 끓인다. 전골처럼 국물이 자작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태백에는 물닭갈비를 판매하는 닭갈비요리점이 많다. 양념한 닭고기에 육수를 부어 끓여 먹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볶아 먹는 춘천닭갈비에 비해 기름기가 적고 맛이 담백하다.
태백닭갈비는 탄광산업이 번성했던 시절 광부들이 즐겨 먹던 음식이다. 얼큰한 국물이 있는 닭갈비에 소주 한잔. 그것은 태백 광부들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이 요리법은 태백에서 식당을 하던 어느 아주머니가 개발했다고 전해진다. 닭고기가 익을 때까지 허기진 배를 달랠 수 있도록 국물에 채소와 면을 곁들여 냈다.
태백에서 맛보는 물닭갈비
춘천식 닭갈비는 메인 메뉴를 충분히 즐긴 후 사리를 추가하는 방식이지만, 태백식 물닭갈비는 애초 사리를 추가하여 주문하는 것이 특징이다. 탄광에서 나와 식사 겸 반주를 위한 자리였을 테니 우동 사리 등으로 우선 급한 허기를 달랜 광부들의 주문 방식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쇠로 만든 움푹 패인 철판에 푸짐하게 나온 떡, 파, 미나리, 쑥갓, 배추 등을 먹다 보면 토막 낸 닭고기가 쫄깃하게 익어간다. 닭고기와 채소, 사리를 모두 건져 먹은 후 마무리로 볶음밥을 주문하면 걸쭉한 국물에 밥을 넣어 김가루를 뿌려 밥알이 탱탱해질 때까지 볶아주는데 이게 참 별미다. 갖은 양념과 음식 재료, 밥알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한 숟가락 크게 떠 김치 한쪽을 올려 맛보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태백 여행 정보
(위) 만항재 일출, (아래)태백고원자연휴양림
태백산 일출을 보려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산행을 시작해야 한다. 칼바람이 부는 어둠 속 등반은 쉽지 않다. 이것이 부담스럽다면 함백산으로 가보자. 태백에서 오투리조트를 지나 만항재로 오르는 도로는 해발 1,330미터로 한국에서 가장 높은 도로다. 이른 새벽 이 도로에 오르면 능선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해를 감상할 수 있다.
태백닭갈비의 원조는 황부자네 닭갈비, 김서방네 닭갈비집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모두 30여 년 전부터 광부들에게 닭갈비를 팔아왔다. 닭갈비를 조리하는 방식은 같지만 음식점마다 양념을 재는 비법과 맛이 약간씩 다르다. 현재 태백 시내에서 닭갈비를 메뉴로 하는 음식점은 10여 곳에 이른다.
태백을 찾은 날의 끝 자리가 5일이라면 꼭 통리장에 들러볼 일이다. 통리장은 태백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으로, 열흘마다 장이 선다. 석탄 산업이 번창한 도시를 대변하듯, 옛 경동탄광 사택을 에둘러 걷는 길 주변에 위치해 있다. 삼척과 울진에서 올라온 통리역의 어물전부터 통리초등학교 입구까지 농산물, 약초, 농기구 등 옛 재래시장의 풍경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태백고원자연휴양림은 철암과 동해를 오가던 새터 동쪽 토산령에 위치해 있다. 사람의 신체가 가장 편안하게 느낀다는 해발 700미터 지점이다. ‘행복이 가득한 숲속에서 하룻밤’이라는 콘셉트로 운영한다.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 알맞은 숙소다.
[글과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18호(26.02.24) 기사입니다]
태백 검룡소
태백 여행의 서막은 검룡소에서 열린다. 장장 514킬로미터를 달려 서해로 향하는 한강의 긴 여정이 바로 이 작은 샘에서 시작된다. 우리 역사가 한강을 젖줄 삼아 흘러왔다면, 검룡소는 그 거대한 서사의 첫 문장을 적어 내려간 시발점인 셈이다.
발원지라고 해서 험준한 산세를 각오할 필요는 없다. 주차장에서 비포장길을 따라 20분 정도 느릿하게 걷다 보면 닿을 수 있는 바다이야기꽁머니 다정한 길이다. 피나무와 물푸레나무가 터널을 이룬 이 길은 아이의 손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맑은 계곡물 소리가 들려 지루함을 덜어준다.
검룡소는 바닥의 조약돌까지 선명하게 보일 만큼 투명하다. 하루에 수천 톤의 지하수가 석회 암반을 뚫고 솟구치는데, 사계절 내내 섭씨 9도 안팎의 온도를 유지한다. 주변 바 릴게임가입머니 위에는 살얼음이 얼어 있지만 정작 물에는 얼음이 없다. 이끼도 푸른색을 유지하고 있다. 상류의 제당궁샘과 고목나무샘 등에서 스며든 물이 지하에서 모여 이곳으로 솟아난다고 전해진다.
검룡소
검룡소 검증완료릴게임 아래쪽에는 폭 1~2미터의 암반을 따라 20미터가량 흐르는 와폭이 형성되어 있다. ‘용틀임 폭포’로 불리는데, 용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옛날 서해의 이무기가 용이 되려고 한강을 따라 올라와 검룡소에 도착했다. 암반을 오르기 위해 몸을 비틀었는데, 지금의 와폭이 바로 그 흔적이라는 이야기다. 층이 깎인 암반을 타고 흐르는 용틀임 폭포를 보고 있노라면, 용 야마토게임 이 되려던 이무기가 몸부림쳤다는 전설이 단순한 옛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검룡소의 물은 골지천, 임계천, 조양강을 지나 정선 가수리에서 동남천과 합쳐져 동강을 만든다. 이후 영월에서 서강과 만나 남한강이 되고, 충주호를 거쳐 양평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해 한강이 완성된다.
놀라운 점은 이 고원에 손오공릴게임 낙동강의 뿌리도 함께 있다는 사실이다. 시내 중심에 위치한 황지연못은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의 발원지다. 『동국여지승람』에도 낙동강의 근원으로 기록되어 있다. 상지, 중지, 하지 3개의 연못으로 구성되며, 상지의 깊은 수굴에서 하루 약 5,000톤의 물이 솟아난다. 연못 둘레는 공원으로 꾸며져 시민 휴게공간이 되었다.
바람의 언덕
검룡소에서 내려올 때 보니, 산 정상에서 하얀 풍력발전기가 회전하는 모습이 보인다. 해발 1,304미터 매봉산 ‘바람의 언덕’에 있는 풍력발전단지다. 가파른 경사의 배추밭 정상 능선에 직경 52미터 풍력발전기 8기가 돌고 있다. 발전기 외에 작은 네덜란드풍 풍차 한 기가 서 있어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람의 언덕으로 가기 전 삼수령 피재와 만날 수 있다. 삼수(三水)란 한반도 남부를 적시는 세 강을 말한다. 서해로 흘러드는 한강, 남해로 가는 낙동강, 그리고 동해로 유입되는 오십천이 그것. 이 세 강의 원류가 모두 태백에 있다. 삼수령 피재는 바로 이 세 계곡의 중심이다. 바람의 언덕에 닿기 전 마루턱에 ‘삼수령 피재’라고 쓰인 안내판이 있어 찾기 쉽다. 조그만 주차장과 정자도 마련되어 있다.
옛 광산마을의 기억
(위에서부터) 옛 번성기를 짐작케 하는 건물들, 철암탄광역사촌, 삼방동 벽화마을
태백 주민들은 오랜 세월 탄광에 의지해 살아왔다. 석탄은 태백이 주민들에게 내린 축복이었다. 정부가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을 시행하기 전까지 말이다. 당시엔 약 50개 광산이 운영되었고, 한때 전국 석탄 생산량의 30퍼센트에 달하는 640만 톤을 생산했다. 개도 돈을 물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지역 경기가 활황이었다.
철암은 태백을 상징하는 광산촌이다. 현재는 작은 마을이지만 과거 인구 3만 명에 달하던 큰 마을이었다. 철암에 들어서면 분위기가 쓸쓸하다. 회색빛 낡은 건물과 한산한 거리, 검은 선탄장이 어우러진 풍경은 석탄산업 전성기인 1970~1980년대에 멈춘 듯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마을 중앙의 철암 역두 선탄(채굴된 석탄 중 정탄을 걸러내는 과정)장이다. 70여 년 역사를 간직한 우리나라 석탄산업의 상징물로, 1935년 지어져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국내 최초의 무연탄 선탄 시설이며, 국가등록문화재 제21호로 등재되어 있다. 건물에는 지금도 석탄가루가 쌓여 있다. 이 검은 가루가 한때 ‘검은 노다지’였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명장면, 안성기와 박중훈이 빗속에서 싸우는 씬을 이곳에서 찍었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촬영지 철암 역두 선탄장
선탄장 맞은편에는 4~5층 건물들이 옛 모습 그대로 간판을 걸고 서 있다. 페리카나 치킨, 봉화식당, 한양다방 등이 보이지만 현재는 모두 문을 닫았다. 대신 철암탄광역사촌으로 재구성되어 박물관과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곳곳에 있는 석탄산업 전성기의 탄광촌 풍경과 주민 생활상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의 촬영 장소로, 여행자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남쪽 신설교에서는 철암 천변의 탄광촌 상징인 ‘까치발 건물’ 11채를 관찰할 수 있다. 까치발 건물은 부족한 주거면적을 확보하려고 하천 바닥에 목재나 철재 지지대를 세워 집을 확장한 것이다. 물 위에 기둥을 박아 지은 수상가옥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삼방동 벽화마을
철암역과 광산이 내려다보이는 삼방동 일대는 벽화마을로 변신했다. 주인 떠난 빈집들이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내지만 담벼락에 빛과 색이 깃들고 관광객들이 찾아들면서 마을은 온기를 되찾았다. 태백산도립공원 입구의 태백석탄박물관에서는 국내 석탄산업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동양 최대의 석탄박물관으로, 광물, 화석, 기계장비, 광부 생활용품 등 8,700여 점의 석탄 관련 유물과 모형을 전시 중이다.
아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도시, 태백
태백에는 아이들과 함께 방문할 만한 곳이 많다.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고생대 지층 위에 세워진 고생대 전문 박물관으로 고생대 삼엽충과 두족류, 공룡 화석 및 자체 제작 영상물, 입체 디오라마 등을 전시한다. 박물관 지하 1층에는 화석 발굴 현장, 화석 탁본, 30억 년 지층 파노라마 등 다양한 체험전시실을 운영한다.
(위) 용연동굴 (아래) 용연동굴 종유석
아이와 함께라면 반드시 가볼 곳이 하나 더 있다. 화전동의 용연동굴이다. 국내 동굴 중 가장 높은 해발 920미터 지점에 위치한다. 1억 5000만~3억 년 전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총 길이 1.5킬로미터다. 동굴 안에는 다양한 형태의 석순과 종유석, 석주 등이 가득하다. 형태에 따라 ‘드라큘라 성’, ‘죠스의 두상’, ‘등용문’ 등 흥미로운 이름이 붙어 있다.
동굴 내부에는 폭 50미터, 길이 130미터의 광장과 인공분수, 조명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자연 조형물들과 조화를 이루는 신비로운 경관을 만든다. 천장이 낮은 구간이 있어 키가 큰 사람은 조금 불편할 수 있지만, 바닥은 평평해서 걷기에 무리가 없다. 여름철에도 내부 온도가 10도로 유지되어 시원하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세트장
드라마 ‘태양의 후예’ 세트장에도 가보자. 극중 모우루 중대와 해성병원 의료봉사단이 머물던 우르크 세트를 메디 큐브와 막사 등으로 재현했다. 태백 부대 옆에는 지진으로 붕괴된 우르크 발전소가 있는데, 드라마 속에서 유시진(송중기)이 강소연(송혜교)의 신발 끈을 묶어준 장소로 유명하다.
수많은 실비집과 태백 한우·물닭갈비… 맛있는 태백
태백은 다른 산악도시에 비해 맛집이 많다. 가장 흔한 것이 고깃집이다. 태성실비, 경성실비, 시장실비, 현대실비 등 식당 이름에 대부분 ‘실비’가 포함된 것도 특징이다. 안창살, 치맛살, 제비추리 등으로 구성된 모둠구이도 훌륭하지만 태백에서는 일단 갈빗살을 먹어보자.
태백 주민들은 소갈빗살을 선호한다. 서울에서 먹던 것은 생갈비를 자르고 남은 자투리 갈빗살이지만 여기서는 처음부터 갈빗살 위주로 정형하기 때문에 고기 맛이 뛰어나다.
된장소면
과거 석탄을 캐던 지역답게 연탄불로 고기를 구워 불향이 배어 고소한 맛이 더욱 진하다. 태백산 고원에서 약초를 먹고 자란 태백한우는 육질이 부드럽고 육즙이 풍부하다. 뜨거운 연탄불에 된장국이 끓기 시작하면 소면을 넣어 먹는데, 된장국에 말아 먹는 소면 맛도 별미다.
물닭갈비도 별미다. 볶음식으로 유명한 춘천닭갈비와 달리 여러 식재료를 쇠판에 넣고 육수를 부어 끓인다. 전골처럼 국물이 자작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태백에는 물닭갈비를 판매하는 닭갈비요리점이 많다. 양념한 닭고기에 육수를 부어 끓여 먹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볶아 먹는 춘천닭갈비에 비해 기름기가 적고 맛이 담백하다.
태백닭갈비는 탄광산업이 번성했던 시절 광부들이 즐겨 먹던 음식이다. 얼큰한 국물이 있는 닭갈비에 소주 한잔. 그것은 태백 광부들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이 요리법은 태백에서 식당을 하던 어느 아주머니가 개발했다고 전해진다. 닭고기가 익을 때까지 허기진 배를 달랠 수 있도록 국물에 채소와 면을 곁들여 냈다.
태백에서 맛보는 물닭갈비
춘천식 닭갈비는 메인 메뉴를 충분히 즐긴 후 사리를 추가하는 방식이지만, 태백식 물닭갈비는 애초 사리를 추가하여 주문하는 것이 특징이다. 탄광에서 나와 식사 겸 반주를 위한 자리였을 테니 우동 사리 등으로 우선 급한 허기를 달랜 광부들의 주문 방식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쇠로 만든 움푹 패인 철판에 푸짐하게 나온 떡, 파, 미나리, 쑥갓, 배추 등을 먹다 보면 토막 낸 닭고기가 쫄깃하게 익어간다. 닭고기와 채소, 사리를 모두 건져 먹은 후 마무리로 볶음밥을 주문하면 걸쭉한 국물에 밥을 넣어 김가루를 뿌려 밥알이 탱탱해질 때까지 볶아주는데 이게 참 별미다. 갖은 양념과 음식 재료, 밥알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한 숟가락 크게 떠 김치 한쪽을 올려 맛보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태백 여행 정보
(위) 만항재 일출, (아래)태백고원자연휴양림
태백산 일출을 보려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산행을 시작해야 한다. 칼바람이 부는 어둠 속 등반은 쉽지 않다. 이것이 부담스럽다면 함백산으로 가보자. 태백에서 오투리조트를 지나 만항재로 오르는 도로는 해발 1,330미터로 한국에서 가장 높은 도로다. 이른 새벽 이 도로에 오르면 능선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해를 감상할 수 있다.
태백닭갈비의 원조는 황부자네 닭갈비, 김서방네 닭갈비집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모두 30여 년 전부터 광부들에게 닭갈비를 팔아왔다. 닭갈비를 조리하는 방식은 같지만 음식점마다 양념을 재는 비법과 맛이 약간씩 다르다. 현재 태백 시내에서 닭갈비를 메뉴로 하는 음식점은 10여 곳에 이른다.
태백을 찾은 날의 끝 자리가 5일이라면 꼭 통리장에 들러볼 일이다. 통리장은 태백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으로, 열흘마다 장이 선다. 석탄 산업이 번창한 도시를 대변하듯, 옛 경동탄광 사택을 에둘러 걷는 길 주변에 위치해 있다. 삼척과 울진에서 올라온 통리역의 어물전부터 통리초등학교 입구까지 농산물, 약초, 농기구 등 옛 재래시장의 풍경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태백고원자연휴양림은 철암과 동해를 오가던 새터 동쪽 토산령에 위치해 있다. 사람의 신체가 가장 편안하게 느낀다는 해발 700미터 지점이다. ‘행복이 가득한 숲속에서 하룻밤’이라는 콘셉트로 운영한다.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 알맞은 숙소다.
[글과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18호(26.02.2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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