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크람스코이(Ivan Kramskoi, 1837–1887), 광야의 그리스도(Христос в пустыне / Christ in the Wilderness), 1872년, 캔버스에 유채, 180 × 210cm, 모스크바 트레차코프미술관(Государственная Третьяковская галерея) 소장.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공용
"나는 이 그림에 내 피를 섞었다."
1872년, 러시아 화가 이반 크람스코이(Иван Николаевич Крамской, 1837–1887)는 자
골드몽릴게임 신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을 완성한 뒤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이 그림에 내 피를 섞었다." 과장처럼 들리지만, 그는 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수년간 습작을 반복했고, 작업이 끝난 후에도 이 작품을 팔기를 오랫동안 거부했습니다.
'광야의 그리스도(Христос в пустыне)', 이 한 점의 그림은 러시아 미술사의 흐름을
게임몰릴게임 바꾸었을 뿐 아니라, '예수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라는 기독교 미술의 오래된 질문에 전혀 새로운 답을 내놓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림만큼이나 이 화가의 삶이 보여 준 궤적이 놀랍습니다.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 불과 9년 전인 1863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제국 미술 아카데미에서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졸업을 앞둔 최고 우
릴게임예시 등생 14명이 학교가 지정한 졸업 작품 주제인 '발할라에 입성하는 오딘'을 거부하고 집단 자퇴를 선언한 것입니다. 이른바 '14인의 반란'으로 불리는 이 사건의 주동자가 바로 이반 크람스코이입니다.
이들의 집단 행동은 단순한 학칙 위반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1860년대 러시아는 1861년 농노 해방령 이후 거대한 사회적 진통을 겪던 시대입
온라인릴게임 니다. 굶주린 농민과 가난한 도시민의 고통이 매일같이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 속에서, 청년 예술가들은 북유럽 신화나 고대 로마의 영웅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아카데미의 형식주의에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 예술은 죽은 신화가 아니라 지금 여기, 민중의 피 끓는 삶을 비춰야 한다고 그들은 믿었고, 그 믿음을 실천하는 방식으로 보장된 엘리트의 길을 걷어찼습니다.
야마토릴게임 크람스코이와 동료들은 거리로 나와 자립형 '예술가 조합'을 결성합니다. 권위주의에 맞선 이들의 결단은 훗날 러시아 리얼리즘의 상징인 '이동파' 탄생의 굳건한 토대가 됩니다.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치열한 양심이 러시아 미술의 방향을 바꾼 것입니다. 그렇다면 궁정과 귀족의 살롱이 아닌 민중의 삶 속으로 예술을 가져간 이 화가가, 왜 하필 광야에서 홀로 앉아 있는 예수를 그렸을까요?
40일의 침묵
마태복음은 이렇게 전합니다.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마태복음 4:1-2) 누가복음은 여기에 한 문장을 더합니다. "그 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매."(누가복음 4:2) 성경은 40일이라는 시간 동안 광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그저 거기서 벌어진 세 번의 시험뿐입니다. 돌로 떡을 만들라는 유혹,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유혹, 세상의 모든 영광을 주겠다는 유혹.
그러나 크람스코이가 눈여겨본 순간은 그 시험의 장면이 아니라, 시험이 시작되기 직전, 혹은 40일의 한가운데를 그려 냅니다. 이때는 아직 사탄이 입을 열기 전이고, 예수가 오직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있는 그 시간입니다. 이것이 이 그림이 말하려는 메시지입니다. 크람스코이는 '사탄의 시험에 승리하는 영웅적 그리스도'가 아니라, '시험 앞에서 깊이 고뇌하는 인간 예수'를 그려 냅니다.
서방 기독교 미술의 전통에서 광야의 유혹 장면은 대개 사탄과 예수의 극적인 대결로 묘사되어 왔습니다. 날개 달린 악마가 돌이나 빵을 들고 있고, 예수는 의연하게 손을 들어 물리치는 모습이 전형적입니다. 하지만, 크람스코이의 그림엔 사탄이 없습니다. 기적도, 천사도, 어떤 초자연적 존재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직 한 사람이, 거친 돌 위에 앉아, 여명과 어둠이 교차하는 시간 속에서 침묵하고 있을 뿐입니다.
돌 위의 인간
이제 작품을 천천히 감상해 봅시다. 가로 210cm, 세로 180cm에 이르는 대형 캔버스의 정중앙, 약간 낮은 위치에 예수가 앉아 있습니다. 그의 자세는 어떤 고전적 위엄과도 거리가 멉니다. 어깨는 살짝 웅크러져 있고, 두 손은 깍지를 끼듯 꽉 맞잡혀 있습니다. 이 손을 주목해 봅시다. 손가락은 핏기가 가셨을 만큼 세게 쥐어져 있고, 손마디의 긴장이 감상자에게까지 전달됩니다. 이 손은 기도하는 손이 아닙니다. 무언가를 참고 있는 손, 자기 안의 격렬한 싸움을 온몸으로 억누르고 있는 사람의 손입니다.
시선은 더 인상적입니다. 예수의 눈은 관람자를 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하늘을 향하지도 않습니다. 그의 시선은 먼 곳, 화면의 왼편 아래를 향해 고정되어 있는데, 어디를 보는지조차 알아채기 힘듭니다. 크람스코이는 이 시선의 방향을 수십 번 수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응시는 바깥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을 향한 것입니다. 40일의 굶주림 끝에 도달한, 인간 의지의 극한 지점에서 자기 안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눈을 크람스코이가 이런 식으로 그려 냅니다.
색채 역시 이 고독을 말합니다.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회색빛 도는 파란색과 흙빛 갈색의 교차입니다. 하늘은 여명인지 황혼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미묘한 빛으로 물들어 있고, 지평선 가까이에서만 희미한 분홍빛이 번집니다. 이 색조는 예수가 처한 시간의 모호함을 드러냅니다. 밤이 끝나 가는 것인지, 이제 막 어둠이 내려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빛과 어둠 사이의 경계에서,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크람스코이는 러시아 리얼리즘의 대가답게 이 모든 것을 과장 없이, 극도로 절제된 방식으로 구현합니다. 광야의 돌멩이 하나하나에 닿는 빛의 질감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그림 전체에서는 비현실적일 만큼 깊은 고요가 흐릅니다. 현실과 초월 사이의 긴장이 이 그림 속에 팽팽히 깃들어 있습니다.
러시아의 그리스도
이 그림이 태어난 19세기 후반 러시아를 이해하지 않고는 이 작품의 깊이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크람스코이가 '광야의 그리스도'를 완성한 1872년은 도스토옙스키가 <악령>을 연재하던 해이자,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시작한 무렵입니다. 러시아 지식인 사회가 거대한 시대적 질문 앞에 서 있던 때입니다. 서구의 합리주의와 물질주의가 밀려오는 가운데, 러시아는 어떤 시대 정신으로 살 것인가. 비관주의가 젊은 세대를 사로잡고 혁명의 기운이 감도는 시대에 그리스도는 여전히 의미 있는 존재인가.
크람스코이는 여느 러시아인들처럼 정통 러시아 정교회 신자는 아닙니다. 그는 제도화된 종교에 깊은 회의를 품고 있었고, 톨스토이와 마찬가지로 교리보다는 그리스도의 도덕적 가르침에 끌린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의 예수는 후광도, 신적 위엄도, 초자연적 표지도 갖추지 않습니다. 대신 그의 예수는 인류가 직면하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 앞에 홀로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선언이 나오기 직전의 그 순간, 정말로 빵 없이 살 수 있는가를 온몸으로 시험받고 있는 신의 아들을 보여 줍니다. 정말 신의 아들이 성육했다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고통에 참여했을 것이라는 그의 생각이 작품에 반영됩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카라마조프 형제들>의 유명한 '대심문관' 장에서 거의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유명한 장면이지요. 대심문관이 돌아온 그리스도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인간을 너무 높이 평가했다. 인간에게는 자유보다 빵이 필요하다." 크람스코이의 그림은 이 질문에 대한 시각적 응답입니다. 돌 위에 앉은 예수의 굳게 쥔 손은, 빵의 유혹으로 상징되는 권력의 유혹, 기적의 유혹, 안락함의 유혹 앞에서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단의 표현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물음이 생깁니다. 크람스코이 자신은 과연 이 광야를 살아 본 사람이었을까요? '14인의 반란' 이후 아카데미의 지원도, 귀족 후원자의 보호도 없이 자립의 길을 걸어야 했던 그의 삶은, 어떤 의미에서 그 자신의 40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그가 이 그림에 자기 피를 섞었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광야
이 그림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반응은 인상적입니다. 1872년 제2회 이동전람회에서 이 작품을 본 관람자들은 오랫동안 그림 앞에서 움직이지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수집가 파벨 트레차코프는 이 그림을 반드시 사겠다고 했지만, 크람스코이는 한동안 팔기를 거절했습니다. 자신의 피가 섞인 그림을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결국 트레차코프의 끈질긴 설득에 양도된 이 작품은 지금도 모스크바 트레차코프미술관에 걸려 있습니다.
이 그림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나에게 광야는 어디인가. 40일의 굶주림은 무엇인가. 나를 시험하는 유혹은 어떤 얼굴로 다가오는가. 크람스코이의 예수가 보여 주는 것은 승리가 아닙니다. 승리 이전의 것, 즉 선택의 무게를 온몸으로 감당하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신앙이란 이미 결정된 답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답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버티는 것임을, 이 침묵하는 그리스도가 묵직하게 전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광야에서, 각자의 돌 위에 앉아 있습니다. 이 그림이 15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초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각자의 광야가 있습니다. 거기서 우리의 시선, 우리의 손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나요.
최주훈 / 중앙루터교회, <뉴스앤조이> 이사장
최주훈 newsnjoy@newsnjo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