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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 임자도의 신안튤립공원의 매화정원. 꽃이 절반쯤 핀 지난주의 모습이다. 아래쪽에 활짝 핀 매화가 어린나무이고, 위쪽이 전남 진도의 수진재에서 가져다 심은 조선홍매다. 조선홍매는 이번 주말쯤 만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임자도(신안)=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고요하게 봄꽃의 첫 소식을 만날 수 있는 멀고 외딴 고즈넉한 섬이 있다. 전남 신안의 섬, 임자도다.
임자도는 지금 갓 피어난 홍매화의 붉은색으로 물들고 있다.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홍매화의 붉은색이 하루하루 더 진하게 번져가고 있다. 이제 시작이지만 백경릴게임 꽃소식 북상은 가속도가 붙었다.예상하는 임자도 매화의 절정은 이번 주말쯤.다음 주까지도 꽃은 남아있겠지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임자도 홍매화의 대부분은 늙은 매화나무에서 피는 꽃, 그러니까 ‘고매화(古梅花)’다. 고고하고 품격있다. 잎 하나 돋지 않은 성마른 가지 끝에 각혈처럼 피어나는 꽃. 눈 속에 피어 맑고 매운 지조를 자랑하는 바다이야기프로그램 옛 그림 속 붉은 매화다. 임자도 매화는 ‘꽃을 보기 위해’ 기른 것이다. 매실 수확을 목적으로 심어 과수(果樹)의 꽃을 보는 섬진강 변 매화와는 격조가 다르다.
임자도 매화가 매혹적인 이유는 여럿이다. 굵은 둥치의 늙은 매화나무가 피운 꽃이라는 것도 그렇고, 다른 곳에는 드문 홍매화가 주종이란 것도 그렇다. 그보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 야마토게임 이야기’에 있다. 임자도에는 억울하게 외딴 섬에 유배된 늙은 사내가 절망과 울분 속에서 거친 붓질로 그려낸 격정적이고 탐미적인 매화 그림 이야기가 있다.
임자도에 가서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매화의 그윽한 암향(暗香)을 맡게 될지도 모르겠다. 옛사람들은 매화 향을 ‘마음이 고요할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봄꽃의 감격과 아름다 사이다쿨접속방법 움을 감상하고, 매화 향을 맡으며 ‘고요한 마음의 순간’까지 경험하고 온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갓 피어서 노란 꽃밥이 달린 홍매화.
# 임자도에 홍매화가 피었다
임자도는 전남 신안군 북쪽 끝의 섬 사이다쿨 이다. 임자도는 섬치고는 큰 편이다. 서울 여의도의 다섯 배 정도 되는 크기에 1100가구 3000여 명이 산다. 임자도는 섬이지만 육로로 갈 수 있다. 무안의 해제반도에서 연륙교로 이어진 지도읍을 지나 임자대교를 딛고 바다를 건너가면 임자도다. 과거에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이었지만, 2021년 3월 다리가 놓이면서부터 차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임자도에는 신안튤립공원이 있다. 홍매화는 튤립공원의 홍매화 정원에서 핀다. 지난 주말 임자도 홍매화 축제는 끝났지만 꽃 폭죽은 이제야 본격적으로 터지기 시작했다. 붉은 매화 꽃망울이 팝콘 튀듯 피어나고 있다. 개화의 시작은 나이의 역순. ‘어린나무부터’다. 울타리처럼 바다와 정원 사이에 줄 맞춰 심은 어린 매화나무 가지부터 꽃불이 붙었다.
어린 것은 빠르고 기민하지만, 늙은 매화나무는 굼뜨다. 이제야 봄의 기척을 느꼈는지, 공원 한가운데 노거수 매화의 뒤틀린 가지 끝에도 이따금 생각난 듯 한두 송이씩 매화가 피기 시작했다. 개화의 속도가 느리고 꽃도 성글지만, 그래도 늙은 나무가 힘겹게 피워낸 매화의 우아한 품격은 한 수 위다.
# 매화가 매혹적인 두 가지 이유
매화나무도 젊은 것과 늙은 것이 있듯이 이 나무가 피운 꽃과 저 나무의 꽃이 다르다. 홍매화는 다 붉지만, 붉다고 다 같은 색은 아니다. 핏빛처럼 검붉은 선홍색이 있는가 하면, 주황색에 가까운 것도 있고, 하늘하늘 연분홍 꽃도 있다. 가만 보면 꽃받침도, 꽃잎의 모양도 조금씩 다르다.
홍매화를 들여다보다 알게 된 것 하나. 홍매화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막 피었을 때다. 갓 핀 홍매화의 수술 끝에는 노란 꽃밥이 달려 있다. 붉은 꽃잎과 노란 꽃밥의 원색 대비가 근사하다. 꽃이 활짝 피면 꽃밥은 이내 떨어져 나가고 앙상한 수술만 남는다. 모든 건 순식간이다. 개화의 아름다움이 지나가는 순간 속에도 ‘더 짧은 순간’이 있다는 얘기. 꽃은 나무에 절정이지만, 그 절정의 와중에도 또 정점이 있다는 뜻이다.
매화가 매혹적인 이유 중 하나가 ‘겨울 추위를 오래 견디고 꽃을 피워서’라면,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꽃이 찰나의 순간처럼 지나가서’가 아닐까. 주어진 시간은 짧고, 아름다운 시간은 붙들 새도 없이 빠르게 지나가고 만다.
# 해남 백매(白梅), 진도 홍매(紅梅)
임자도 홍매화 축제가 열린 곳은 신안튤립공원이다. ‘튤립공원’이니까, 본래 공원의 주인은 매화가 아니라 튤립이었다. 신안튤립공원은 지난 2008년 주민들이 가격이 폭락한 대파밭을 갈아엎고, 대체 작목으로 튤립 꽃 농사를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 처음 조성된 튤립꽃밭은 광활했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대파값이 슬금슬금 오르면서 절반에 가까운 튤립재배지가 대파밭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왜소해진 튤립꽃밭 한쪽에다 매화나무를 심기 시작한 게 2021년 가을부터다. 온 세상이 코로나19의 공포에 휩싸여 있던 무렵. 여행은커녕 외출마저 어려웠던 때다. 꽃이 핀다 해도 봐줄 사람이 없던 시절이었다.
계기가 있었다. 해남의 보해농원에 태양광발전을 들이면서 늙은 매화나무 1200그루가 베어질 위기에 처했던 것. 튤립공원에다 그걸 가져다 심어 매화정원을 만들기로 했다. 임자도와 매화는 실은, 오래된 인연이 있었다. 그 얘긴 뒤에서 다시. 백사장을 끼고 있는 모래땅에서 잘 자랄지 걱정스러웠지만 옮겨 심은 매화나무는 잘 적응했다.
내친김에 신안군은 전국에 노거수 매화를 수소문했다. 그러다가 진도 첨찰산 아래 매화농원 ‘수진재(守眞齋)’와 인연이 닿았다. 문인화를 그리는 은퇴한 대학교수의 작업실 겸 별장이자 매화정원인 수진재는 ‘조선 홍매’로 그득한 곳이었다.
조선 홍매란, 홍매화 씨를 심어 기른 2대(代) 나무 가운데 붉은 꽃을 피우는 매화나무 씨만 받아 3대 나무를 기르는 방식으로 키워낸 매화를 지칭하는 이름. 수진재 주인이 붙인 이름인데, “붉은 꽃으로 대를 잇다 보니 열매도 작아지고 꽃도 작아지면서 토종매화의 특질이 드러난다”는 게 작명의 이유였다.
# 늙은 매화를 줄 맞춰서 심어보니
조선 홍매가 탐난 신안군은 수진재 주인에게 ‘최고의 홍매화 정원을 만들어 보겠다’며 설득했다. 오랜 줄다리기 끝에 기증과 거래의 중간쯤의 선에서 합의가 이뤄졌고, 수진재의 매화나무 노거수 455그루가 임자도 튤립공원으로 옮겨졌다.
수진재의 조선 홍매까지 손에 넣은 신안군은, 이번에는 전북 남원과 경기 여주 등지에서 ‘일본 매화’라 부르는 붉은 비매(飛梅) 800여 그루를 구했다. 가지가 축축 늘어지는 수양 홍매화도 어렵게 구해 가져다 심었다. 어린 홍매 묘목도 구해다가 공원에 가로수처럼 심었다. 튤립공원의 매화정원에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가져다 심은 매화나무가 올해로 다섯 번째 봄을 맞는다.
한 그루 한 그루가 귀한 조선 홍매와 늙은 백매를 한 곳에다 모아놓았다는 건 누구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일. 그런데 기대가 커서 그럴까. 이렇게 모아놓으니 상상했던 것보다 감흥이 덜하다. 늙은 매화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자태와 위용은 나무랄 데 없는데, 그걸 한곳에 다 모아놓으니 어쩐지 귀함이 사라져버린 느낌이었다. 황혼의 노년들을 초등학교 입학식에 줄 맞춰 세워놓은 듯해서 영 어색하다.
한 그루씩 있을 때는 하나하나 귀하고 대견했는데, 존재감 넘치던 노거수를 줄 맞춰 심어놓으니 어떤 게 어떤 건지 구분도 안 될 지경이다.
기품과 지조를 잃은 듯한 매화나무의 아쉬움을, 신안군은 ‘물량 공세’의 화려함으로 정면돌파하려는 기세다. 튤립공원의 매화정원에는 물론이고, 임자도 곳곳에 홍매화를 가져다 심었다. 담장 아래 심고, 문 옆에 심고, 길가에 가로수로 심었다. 그 덕에 임자도에는 지금 풍성한 색감의 홍매화가 흔전만전이다.
매화정원의 10억 원짜리 매화나무. 옮겨 심은 뒤로 수세(樹勢)가 급격히 약해져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 중이다.
# 임자도 홍매화는 138억 원짜리
임자도의 매화정원에는 ‘백억원(百億園)’이란 별칭도 있었다. 정원에 심은 조선 홍매의 가치를 따진다면 ‘적어도 100억 원은 될 것’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었다. 지금은 뗐지만, 한때 조선 홍매의 추정가치를 적어놓은 팻말도 있었다. 팻말에 10억 원짜리가 1그루, 3억 원짜리가 1그루 있다고 적어놓았다. 그 아래로 5000만 원짜리 나무 149그루가 있고, 3000만 원짜리 93그루가 있다고 했다. 이렇게 매긴 조선 홍매의 합산 추정가치가 138억 원이었다.
‘10억 원짜리’로 지목한 매화나무는 매화정원 입구 쪽에 있다. 워낙 크기와 위용이 압도적이어서 대번에 ‘귀물(貴物)’이라 느껴졌다. 이만한 크기의 매화나무가 있다는 걸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진도의 수진재에서 가져온 이 매화나무는 수령 150년이 훨씬 넘는다. 혹시라도 바닷바람이나 염분에 해를 입지나 않을까 싶어서 나무 주변으로 강관 비계로 만든 임시가설물을 설치해 놓았다. 나무는 지치고 쇠잔한 모습. 곳곳에 외과수술로 수피(樹皮)를 벗겨낸 흔적이 보였다. 이 나무는, 다시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유배 온 조희룡이 머문 공간을 복원한 조희룡적거지. 주변에 가득 심은 매화나무에 꽃이 만발했다.
# 임자도와 매화 사이 인물, 조희룡
뒤로 미뤄둔 임자도와 매화의 인연에 대한 얘기다. 임자도에다 매화를 심은 데는 다 뜻이 있었다. 170여 년 전 신안의 임자도에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 이 거칠고 먼 섬까지 유배 온 이가 있었다. 시서화(詩書畵)에 두루 능했다는 문인화가 조희룡(趙熙龍)이다.
중인 출신으로 조선 후기 화단의 중심에 섰던 그는 특히 매화를 잘 그리기로 이름이 났다. 조희룡의 매화 그림은 다른 이들과 달랐다. 다른 이들이 늙은 매화의 부러진 가지나 마른 가지에 듬성듬성 꽃을 그릴 때, 그는 무성한 가지에 탐미적인 홍매를 대담하게 그렸다. 그가 그린 홍매는 화려하고 고혹적이었다. 그런 탓에 ‘절제미가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고, 그게 한계가 돼서 추사 김정희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유배 온 건 예법을 두고 벌어진 논쟁 때문이었다. 헌종의 묘를 옮기는 중차대한 문제를 놓고 당대 최고 권력자들이 예법의 해석을 달리하며 두 패로 나뉘어 권력투쟁을 벌였다. 이른바 ‘예송논쟁’이다. 이 와중에 추사 김정희에게 낙도유배 명이 떨어졌는데, 조희룡도 세 살 차이 연상인 추사와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배에 처해졌다.
양반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주 ‘미천하다’고 멸시당했던 조희룡은, 원죄 격인 추사의 1년 유배보다 훨씬 긴 19개월 동안 유배생활을 해야 했다. 내로라하는 권력자들이 벌인 이전투구의 권력 싸움에 휘말려 들어 영문 모를 유배를 더 길게 당한 셈이었다. 한 줌의 권력도 없는 중인 신분의 조희룡이 과연 왕실의 예법 따위에 무슨 티끌만 한 관심이라도 있었을까.
그가 남긴 편지의 한 구절에서 억울했던 심경이 묻어나온다. “우리 같은 ‘벌레의 팔’과 ‘쥐의 간’ 따위가 어찌 여기에 참여가 된단 말입니까….” 그는 멀고 거친 섬, 임자도에 유폐됐다. 원통함과 고달픔으로 가득했던 유배지에서의 삶이었다. 오로지 그리는 것만으로 일체의 괴로움을 이기고자 했던 그는 화폭에 넘치도록 매화를 그렸다.
# 함박눈처럼 꽃이 쏟아진다
임자도에는 조희룡미술관이 있다. 그의 일대기를 전시하고 그가 남긴 그림을, 복제품이나마 걸어놓은 미술관이다. 조희룡의 그림 중에는 압도적으로 매화도가 많다. 남아 있는 매화 그림만 40여 점에 달한다. 그는 힘찬 필법으로 꿈틀거리는 매화 등걸 사이에 붉은 매화꽃을 그렸다.
조희룡의 분방한 붓질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이 ‘홍백매화도’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인데 미술관에는 복제품을 걸었다. 원작의 감동에 비길 수야 없겠지만, 여덟 폭 병풍 전체에 용이 솟구쳐 올라가듯 그려진 매화나무 줄기가 압도적이다. 가지마다 흰 꽃송이와 붉은 꽃송이가 만발해 있다.
조희룡의 원숙한 필치가 돋보이는 걸작 중의 걸작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는 이이남 작가의 미디어아트로 구현됐다. 그림 속의 희고 붉은 매화가 마치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 같다.
아쉬웠던 건 미술관에서 조희룡 그림의 진본을 한 작품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신안군이 진본 그림 10점을 사들여 소유하고 있지만, 전시 관리상의 어려움으로 모두 다 수장고에 넣어두고 있단다. 기왕 적잖은 돈을 들여 사들였다면 관리시스템을 보완해서라도 어떻게든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임자도 이흑암리에는 조희룡이 유배생활을 했던 적거지(謫居地)가 있다. 적거지란 ‘유배 때 머물던 곳’이란 뜻이다. 오랫동안 비석 하나만으로 기렸다가 수년 전에 초가지붕의 누옥으로 복원했다. 주변에 비석 몇 개와 벽화 한두 개, 누추한 집 하나가 전부라 ‘가보라’고 권하기가 좀 망설여졌다. 그런데 적거지 뒤쪽의 구릉에 깜짝 놀랄 만큼 큰 홍매화 숲을 만들어놓았다. 적거지의 홍매화는 꽃이 일러서 지금 절정을 넘어가고 있다.
임자도 어머리해변 끝의 바위지대. 바위틈 사이에서 용이 나왔다는 ‘용난굴’이 있다.
# 달빛 환한 은동해변의 봄밤
임자도 남쪽의 어머리 해변에도 조희룡의 자취가 있다. 해안 바위를 찢어낸 듯한 기괴한 동굴 ‘용난굴’이다. 중국에서 청자를 싣고 오던 배가 임자도 앞바다에 침몰한 뒤 살아남은 선원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흘린 눈물이 바위에 떨어져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용이 나왔다고 해서 용난굴이다. 마을 주민들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조희룡은 매화 둥치가 용처럼 힘차게 뒤틀린 ‘용매도(龍梅圖)’를 그렸다.
어머리 해변에서 산허리를 잘라 이은 임도를 넘어가면 은동해수욕장이다. 조용하고 아늑한 해변이다. 민가 한 채가 바다를 독점하다시피 자리 잡은 곳인데, 백사장도 곱고 경관도 빼어나다.
조희룡이 임자도에서 꼽은 세 가지 절경, 이른바 ‘임자도 삼절’ 중 하나가 바로 ‘은동에 뜨는 달’이다. 비록 달맞이는 못 했지만 안온한 맛이 느껴지는 은동해변에 달이 뜨는 전경이 얼마나 아름다울지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했다. 유배지에서 고독을 달래던 조희룡이 이 해변의 달빛 아래 앉아 붓을 들었을 모습을 생각했다. 아마도 매화도 달빛을 받아 암향을 뿜는 밤이었으리라.
■ 임자도 ‘대파’
임자도의 ‘임자(荏子)’는 들깨다. 예전에 섬에 들깨가 많이 자랐던 모양이다. 섬에 들깨가 얼마나 많았으면 섬 이름을 ‘임자’로 지었을까. 과거에 들깨였다면, 요즘 임자도는 대파다. 대파도 사질토에서 잘 자란다. 전남 신안의 섬은 전국 대파 물량의 70%를 공급한다. 신안의 파가 시장을 석권한 건 품질이 좋아서다. 대파 뿌리 위쪽의 흰 부분을 ‘연백’이라 부르는데, 연백이 길고 두꺼운 걸 최상품으로 친다.
박경일 기자
임자도(신안)=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고요하게 봄꽃의 첫 소식을 만날 수 있는 멀고 외딴 고즈넉한 섬이 있다. 전남 신안의 섬, 임자도다.
임자도는 지금 갓 피어난 홍매화의 붉은색으로 물들고 있다.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홍매화의 붉은색이 하루하루 더 진하게 번져가고 있다. 이제 시작이지만 백경릴게임 꽃소식 북상은 가속도가 붙었다.예상하는 임자도 매화의 절정은 이번 주말쯤.다음 주까지도 꽃은 남아있겠지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임자도 홍매화의 대부분은 늙은 매화나무에서 피는 꽃, 그러니까 ‘고매화(古梅花)’다. 고고하고 품격있다. 잎 하나 돋지 않은 성마른 가지 끝에 각혈처럼 피어나는 꽃. 눈 속에 피어 맑고 매운 지조를 자랑하는 바다이야기프로그램 옛 그림 속 붉은 매화다. 임자도 매화는 ‘꽃을 보기 위해’ 기른 것이다. 매실 수확을 목적으로 심어 과수(果樹)의 꽃을 보는 섬진강 변 매화와는 격조가 다르다.
임자도 매화가 매혹적인 이유는 여럿이다. 굵은 둥치의 늙은 매화나무가 피운 꽃이라는 것도 그렇고, 다른 곳에는 드문 홍매화가 주종이란 것도 그렇다. 그보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 야마토게임 이야기’에 있다. 임자도에는 억울하게 외딴 섬에 유배된 늙은 사내가 절망과 울분 속에서 거친 붓질로 그려낸 격정적이고 탐미적인 매화 그림 이야기가 있다.
임자도에 가서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매화의 그윽한 암향(暗香)을 맡게 될지도 모르겠다. 옛사람들은 매화 향을 ‘마음이 고요할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봄꽃의 감격과 아름다 사이다쿨접속방법 움을 감상하고, 매화 향을 맡으며 ‘고요한 마음의 순간’까지 경험하고 온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갓 피어서 노란 꽃밥이 달린 홍매화.
# 임자도에 홍매화가 피었다
임자도는 전남 신안군 북쪽 끝의 섬 사이다쿨 이다. 임자도는 섬치고는 큰 편이다. 서울 여의도의 다섯 배 정도 되는 크기에 1100가구 3000여 명이 산다. 임자도는 섬이지만 육로로 갈 수 있다. 무안의 해제반도에서 연륙교로 이어진 지도읍을 지나 임자대교를 딛고 바다를 건너가면 임자도다. 과거에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이었지만, 2021년 3월 다리가 놓이면서부터 차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임자도에는 신안튤립공원이 있다. 홍매화는 튤립공원의 홍매화 정원에서 핀다. 지난 주말 임자도 홍매화 축제는 끝났지만 꽃 폭죽은 이제야 본격적으로 터지기 시작했다. 붉은 매화 꽃망울이 팝콘 튀듯 피어나고 있다. 개화의 시작은 나이의 역순. ‘어린나무부터’다. 울타리처럼 바다와 정원 사이에 줄 맞춰 심은 어린 매화나무 가지부터 꽃불이 붙었다.
어린 것은 빠르고 기민하지만, 늙은 매화나무는 굼뜨다. 이제야 봄의 기척을 느꼈는지, 공원 한가운데 노거수 매화의 뒤틀린 가지 끝에도 이따금 생각난 듯 한두 송이씩 매화가 피기 시작했다. 개화의 속도가 느리고 꽃도 성글지만, 그래도 늙은 나무가 힘겹게 피워낸 매화의 우아한 품격은 한 수 위다.
# 매화가 매혹적인 두 가지 이유
매화나무도 젊은 것과 늙은 것이 있듯이 이 나무가 피운 꽃과 저 나무의 꽃이 다르다. 홍매화는 다 붉지만, 붉다고 다 같은 색은 아니다. 핏빛처럼 검붉은 선홍색이 있는가 하면, 주황색에 가까운 것도 있고, 하늘하늘 연분홍 꽃도 있다. 가만 보면 꽃받침도, 꽃잎의 모양도 조금씩 다르다.
홍매화를 들여다보다 알게 된 것 하나. 홍매화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막 피었을 때다. 갓 핀 홍매화의 수술 끝에는 노란 꽃밥이 달려 있다. 붉은 꽃잎과 노란 꽃밥의 원색 대비가 근사하다. 꽃이 활짝 피면 꽃밥은 이내 떨어져 나가고 앙상한 수술만 남는다. 모든 건 순식간이다. 개화의 아름다움이 지나가는 순간 속에도 ‘더 짧은 순간’이 있다는 얘기. 꽃은 나무에 절정이지만, 그 절정의 와중에도 또 정점이 있다는 뜻이다.
매화가 매혹적인 이유 중 하나가 ‘겨울 추위를 오래 견디고 꽃을 피워서’라면,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꽃이 찰나의 순간처럼 지나가서’가 아닐까. 주어진 시간은 짧고, 아름다운 시간은 붙들 새도 없이 빠르게 지나가고 만다.
# 해남 백매(白梅), 진도 홍매(紅梅)
임자도 홍매화 축제가 열린 곳은 신안튤립공원이다. ‘튤립공원’이니까, 본래 공원의 주인은 매화가 아니라 튤립이었다. 신안튤립공원은 지난 2008년 주민들이 가격이 폭락한 대파밭을 갈아엎고, 대체 작목으로 튤립 꽃 농사를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 처음 조성된 튤립꽃밭은 광활했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대파값이 슬금슬금 오르면서 절반에 가까운 튤립재배지가 대파밭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왜소해진 튤립꽃밭 한쪽에다 매화나무를 심기 시작한 게 2021년 가을부터다. 온 세상이 코로나19의 공포에 휩싸여 있던 무렵. 여행은커녕 외출마저 어려웠던 때다. 꽃이 핀다 해도 봐줄 사람이 없던 시절이었다.
계기가 있었다. 해남의 보해농원에 태양광발전을 들이면서 늙은 매화나무 1200그루가 베어질 위기에 처했던 것. 튤립공원에다 그걸 가져다 심어 매화정원을 만들기로 했다. 임자도와 매화는 실은, 오래된 인연이 있었다. 그 얘긴 뒤에서 다시. 백사장을 끼고 있는 모래땅에서 잘 자랄지 걱정스러웠지만 옮겨 심은 매화나무는 잘 적응했다.
내친김에 신안군은 전국에 노거수 매화를 수소문했다. 그러다가 진도 첨찰산 아래 매화농원 ‘수진재(守眞齋)’와 인연이 닿았다. 문인화를 그리는 은퇴한 대학교수의 작업실 겸 별장이자 매화정원인 수진재는 ‘조선 홍매’로 그득한 곳이었다.
조선 홍매란, 홍매화 씨를 심어 기른 2대(代) 나무 가운데 붉은 꽃을 피우는 매화나무 씨만 받아 3대 나무를 기르는 방식으로 키워낸 매화를 지칭하는 이름. 수진재 주인이 붙인 이름인데, “붉은 꽃으로 대를 잇다 보니 열매도 작아지고 꽃도 작아지면서 토종매화의 특질이 드러난다”는 게 작명의 이유였다.
# 늙은 매화를 줄 맞춰서 심어보니
조선 홍매가 탐난 신안군은 수진재 주인에게 ‘최고의 홍매화 정원을 만들어 보겠다’며 설득했다. 오랜 줄다리기 끝에 기증과 거래의 중간쯤의 선에서 합의가 이뤄졌고, 수진재의 매화나무 노거수 455그루가 임자도 튤립공원으로 옮겨졌다.
수진재의 조선 홍매까지 손에 넣은 신안군은, 이번에는 전북 남원과 경기 여주 등지에서 ‘일본 매화’라 부르는 붉은 비매(飛梅) 800여 그루를 구했다. 가지가 축축 늘어지는 수양 홍매화도 어렵게 구해 가져다 심었다. 어린 홍매 묘목도 구해다가 공원에 가로수처럼 심었다. 튤립공원의 매화정원에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가져다 심은 매화나무가 올해로 다섯 번째 봄을 맞는다.
한 그루 한 그루가 귀한 조선 홍매와 늙은 백매를 한 곳에다 모아놓았다는 건 누구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일. 그런데 기대가 커서 그럴까. 이렇게 모아놓으니 상상했던 것보다 감흥이 덜하다. 늙은 매화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자태와 위용은 나무랄 데 없는데, 그걸 한곳에 다 모아놓으니 어쩐지 귀함이 사라져버린 느낌이었다. 황혼의 노년들을 초등학교 입학식에 줄 맞춰 세워놓은 듯해서 영 어색하다.
한 그루씩 있을 때는 하나하나 귀하고 대견했는데, 존재감 넘치던 노거수를 줄 맞춰 심어놓으니 어떤 게 어떤 건지 구분도 안 될 지경이다.
기품과 지조를 잃은 듯한 매화나무의 아쉬움을, 신안군은 ‘물량 공세’의 화려함으로 정면돌파하려는 기세다. 튤립공원의 매화정원에는 물론이고, 임자도 곳곳에 홍매화를 가져다 심었다. 담장 아래 심고, 문 옆에 심고, 길가에 가로수로 심었다. 그 덕에 임자도에는 지금 풍성한 색감의 홍매화가 흔전만전이다.
매화정원의 10억 원짜리 매화나무. 옮겨 심은 뒤로 수세(樹勢)가 급격히 약해져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 중이다.
# 임자도 홍매화는 138억 원짜리
임자도의 매화정원에는 ‘백억원(百億園)’이란 별칭도 있었다. 정원에 심은 조선 홍매의 가치를 따진다면 ‘적어도 100억 원은 될 것’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었다. 지금은 뗐지만, 한때 조선 홍매의 추정가치를 적어놓은 팻말도 있었다. 팻말에 10억 원짜리가 1그루, 3억 원짜리가 1그루 있다고 적어놓았다. 그 아래로 5000만 원짜리 나무 149그루가 있고, 3000만 원짜리 93그루가 있다고 했다. 이렇게 매긴 조선 홍매의 합산 추정가치가 138억 원이었다.
‘10억 원짜리’로 지목한 매화나무는 매화정원 입구 쪽에 있다. 워낙 크기와 위용이 압도적이어서 대번에 ‘귀물(貴物)’이라 느껴졌다. 이만한 크기의 매화나무가 있다는 걸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진도의 수진재에서 가져온 이 매화나무는 수령 150년이 훨씬 넘는다. 혹시라도 바닷바람이나 염분에 해를 입지나 않을까 싶어서 나무 주변으로 강관 비계로 만든 임시가설물을 설치해 놓았다. 나무는 지치고 쇠잔한 모습. 곳곳에 외과수술로 수피(樹皮)를 벗겨낸 흔적이 보였다. 이 나무는, 다시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유배 온 조희룡이 머문 공간을 복원한 조희룡적거지. 주변에 가득 심은 매화나무에 꽃이 만발했다.
# 임자도와 매화 사이 인물, 조희룡
뒤로 미뤄둔 임자도와 매화의 인연에 대한 얘기다. 임자도에다 매화를 심은 데는 다 뜻이 있었다. 170여 년 전 신안의 임자도에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 이 거칠고 먼 섬까지 유배 온 이가 있었다. 시서화(詩書畵)에 두루 능했다는 문인화가 조희룡(趙熙龍)이다.
중인 출신으로 조선 후기 화단의 중심에 섰던 그는 특히 매화를 잘 그리기로 이름이 났다. 조희룡의 매화 그림은 다른 이들과 달랐다. 다른 이들이 늙은 매화의 부러진 가지나 마른 가지에 듬성듬성 꽃을 그릴 때, 그는 무성한 가지에 탐미적인 홍매를 대담하게 그렸다. 그가 그린 홍매는 화려하고 고혹적이었다. 그런 탓에 ‘절제미가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고, 그게 한계가 돼서 추사 김정희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유배 온 건 예법을 두고 벌어진 논쟁 때문이었다. 헌종의 묘를 옮기는 중차대한 문제를 놓고 당대 최고 권력자들이 예법의 해석을 달리하며 두 패로 나뉘어 권력투쟁을 벌였다. 이른바 ‘예송논쟁’이다. 이 와중에 추사 김정희에게 낙도유배 명이 떨어졌는데, 조희룡도 세 살 차이 연상인 추사와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배에 처해졌다.
양반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주 ‘미천하다’고 멸시당했던 조희룡은, 원죄 격인 추사의 1년 유배보다 훨씬 긴 19개월 동안 유배생활을 해야 했다. 내로라하는 권력자들이 벌인 이전투구의 권력 싸움에 휘말려 들어 영문 모를 유배를 더 길게 당한 셈이었다. 한 줌의 권력도 없는 중인 신분의 조희룡이 과연 왕실의 예법 따위에 무슨 티끌만 한 관심이라도 있었을까.
그가 남긴 편지의 한 구절에서 억울했던 심경이 묻어나온다. “우리 같은 ‘벌레의 팔’과 ‘쥐의 간’ 따위가 어찌 여기에 참여가 된단 말입니까….” 그는 멀고 거친 섬, 임자도에 유폐됐다. 원통함과 고달픔으로 가득했던 유배지에서의 삶이었다. 오로지 그리는 것만으로 일체의 괴로움을 이기고자 했던 그는 화폭에 넘치도록 매화를 그렸다.
# 함박눈처럼 꽃이 쏟아진다
임자도에는 조희룡미술관이 있다. 그의 일대기를 전시하고 그가 남긴 그림을, 복제품이나마 걸어놓은 미술관이다. 조희룡의 그림 중에는 압도적으로 매화도가 많다. 남아 있는 매화 그림만 40여 점에 달한다. 그는 힘찬 필법으로 꿈틀거리는 매화 등걸 사이에 붉은 매화꽃을 그렸다.
조희룡의 분방한 붓질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이 ‘홍백매화도’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인데 미술관에는 복제품을 걸었다. 원작의 감동에 비길 수야 없겠지만, 여덟 폭 병풍 전체에 용이 솟구쳐 올라가듯 그려진 매화나무 줄기가 압도적이다. 가지마다 흰 꽃송이와 붉은 꽃송이가 만발해 있다.
조희룡의 원숙한 필치가 돋보이는 걸작 중의 걸작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는 이이남 작가의 미디어아트로 구현됐다. 그림 속의 희고 붉은 매화가 마치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 같다.
아쉬웠던 건 미술관에서 조희룡 그림의 진본을 한 작품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신안군이 진본 그림 10점을 사들여 소유하고 있지만, 전시 관리상의 어려움으로 모두 다 수장고에 넣어두고 있단다. 기왕 적잖은 돈을 들여 사들였다면 관리시스템을 보완해서라도 어떻게든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임자도 이흑암리에는 조희룡이 유배생활을 했던 적거지(謫居地)가 있다. 적거지란 ‘유배 때 머물던 곳’이란 뜻이다. 오랫동안 비석 하나만으로 기렸다가 수년 전에 초가지붕의 누옥으로 복원했다. 주변에 비석 몇 개와 벽화 한두 개, 누추한 집 하나가 전부라 ‘가보라’고 권하기가 좀 망설여졌다. 그런데 적거지 뒤쪽의 구릉에 깜짝 놀랄 만큼 큰 홍매화 숲을 만들어놓았다. 적거지의 홍매화는 꽃이 일러서 지금 절정을 넘어가고 있다.
임자도 어머리해변 끝의 바위지대. 바위틈 사이에서 용이 나왔다는 ‘용난굴’이 있다.
# 달빛 환한 은동해변의 봄밤
임자도 남쪽의 어머리 해변에도 조희룡의 자취가 있다. 해안 바위를 찢어낸 듯한 기괴한 동굴 ‘용난굴’이다. 중국에서 청자를 싣고 오던 배가 임자도 앞바다에 침몰한 뒤 살아남은 선원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흘린 눈물이 바위에 떨어져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용이 나왔다고 해서 용난굴이다. 마을 주민들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조희룡은 매화 둥치가 용처럼 힘차게 뒤틀린 ‘용매도(龍梅圖)’를 그렸다.
어머리 해변에서 산허리를 잘라 이은 임도를 넘어가면 은동해수욕장이다. 조용하고 아늑한 해변이다. 민가 한 채가 바다를 독점하다시피 자리 잡은 곳인데, 백사장도 곱고 경관도 빼어나다.
조희룡이 임자도에서 꼽은 세 가지 절경, 이른바 ‘임자도 삼절’ 중 하나가 바로 ‘은동에 뜨는 달’이다. 비록 달맞이는 못 했지만 안온한 맛이 느껴지는 은동해변에 달이 뜨는 전경이 얼마나 아름다울지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했다. 유배지에서 고독을 달래던 조희룡이 이 해변의 달빛 아래 앉아 붓을 들었을 모습을 생각했다. 아마도 매화도 달빛을 받아 암향을 뿜는 밤이었으리라.
■ 임자도 ‘대파’
임자도의 ‘임자(荏子)’는 들깨다. 예전에 섬에 들깨가 많이 자랐던 모양이다. 섬에 들깨가 얼마나 많았으면 섬 이름을 ‘임자’로 지었을까. 과거에 들깨였다면, 요즘 임자도는 대파다. 대파도 사질토에서 잘 자란다. 전남 신안의 섬은 전국 대파 물량의 70%를 공급한다. 신안의 파가 시장을 석권한 건 품질이 좋아서다. 대파 뿌리 위쪽의 흰 부분을 ‘연백’이라 부르는데, 연백이 길고 두꺼운 걸 최상품으로 친다.
박경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