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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미너가 부족할 때, 시알리스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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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
- 26-02-18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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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미너가 부족할 때,
시알리스가 필요한 이유
1. 사랑에도 체력이 필요하다
연애의 시작은 늘 뜨겁습니다. 서로를 향한 기대감, 설레는 감정, 끊임없는 스킨십.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요즘 왜 이렇게 피곤하지?
예전처럼 활력이 넘치지 않네...
자꾸 미루게 되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관계에도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연애도 결국 체력 싸움입니다. 상대방을 만족시키고, 관계를 지속하려면 스태미너가 필수적입니다.
그렇다면 스태미너 부족이 연인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그리고 이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해답은 시알리스에 있습니다.
2. 스태미너 부족이 연애에 미치는 영향
스태미너가 부족하면 단순히 몸이 피곤한 것만이 아닙니다.연인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1 관계 횟수 감소점점 멀어지는 거리
예전에는 언제든 서로를 향한 열정이 넘쳤는데,이제는 오늘은 좀 피곤한데...라고 말하는 횟수가 늘어납니다.
처음에는 상대도 이해해 줍니다. 하지만 이런 날이 반복되면?
상대방은 점점 불만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내가 매력이 떨어졌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결국 신체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거리까지 멀어질 수 있습니다.
2 관계의 질 저하만족도가 떨어진다
설령 관계를 갖더라도, 예전만큼의 활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면?상대방도 자연스럽게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엔 더 오래 지속됐는데...
요즘은 금방 끝나네...
뭔가 아쉬운데...
이런 작은 불만들이 쌓이면, 연인 관계의 만족도 자체가 떨어지게 됩니다.
3 자신감 저하관계 회피로 이어진다
스태미너가 부족하면, 자연스럽게 자신감도 줄어듭니다.
괜히 시도했다가 실망시키면 어쩌지?
잘 안 될 수도 있는데, 그냥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제 그런 걸 신경 쓸 나이는 지난 것 같아...
이렇게 스스로를 위축시키다 보면, 점점 관계 자체를 피하게 되고, 결국 연인 사이의 친밀감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3. 스태미너 부족,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연인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스태미너를 회복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그리고 그 해결책 중 하나가 바로 시알리스입니다.
1 시알리스스태미너 회복의 열쇠
시알리스는 단순한 정력 강화제가 아닙니다.연인 관계의 질을 높이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2 시알리스의 주요 효과
최대 36시간 지속되는 효과
지금 먹어야 하나? 걱정할 필요 없이 여유롭게 준비 가능
원하는 순간에 맞춰 자연스럽게 관계를 가질 수 있음
강력한 지구력 강화
스태미너 부족으로 인한 고민 해결
더욱 만족스러운 관계 유지 가능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 조성
부담 없이 스킨십 유도 가능
관계에 대한 자신감을 높여줌
결과적으로, 시알리스는 연인 관계를 더욱 활기차고 만족스럽게 만들어줍니다.
4. 시알리스와 함께하는 연애 활력 회복법
스태미너를 회복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시알리스와 함께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1 규칙적인 운동으로 기초 체력 강화
스태미너를 유지하려면 운동은 필수입니다.
특히 유산소 운동조깅, 수영, 자전거은 체력을 높이고, 활력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여기에 근력 운동까지 더하면, 더욱 강한 체력을 만들 수 있습니다.
2 균형 잡힌 식습관 유지
고단백 식품소고기, 닭가슴살, 생선을 섭취하면 스태미너 향상에 도움을 줍니다.
견과류, 바나나, 굴 등의 음식도 좋은 선택입니다.
과도한 음주와 흡연은 스태미너 저하의 주범이므로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3 시알리스로 자신감 충전
생활 습관 개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은 시알리스의 도움을 받으면 더욱 효과적입니다.
특히 중요한 순간에 확실한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는 시알리스가 필수적입니다.
5. 스태미너를 되찾고, 연인 관계를 더욱 뜨겁게
스태미너 부족은 단순한 피로가 아닙니다.연인 관계의 만족도와 지속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해결 방법은 분명합니다.
규칙적인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으로 기본 체력을 다지고
시알리스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면
다시금 활력 넘치는 연애를 즐길 수 있습니다.
스태미너가 연애를 결정짓습니다.그리고 그 스태미너를 되찾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시알리스입니다.
지금 바로 연애 활력을 되찾는 첫걸음을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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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신선영
‘먹다’와 ‘살다’는 붙어 다니는 말이다. 먹어야 살고, 살기 위해 먹는다. 그 과정 전부를 ‘일’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2024년 8월부터 르포 작가 은유(54)의 인터뷰 ‘먹고사는 일’이 〈시사IN〉에 연재됐다. 일하는 사람이 덜 죽고 덜 다치는 세상을 위한 전태일의료센터 건립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1년6개월 동안 총 17명을 만났다. 일하는 사람, 평범한 사람들을 주인공 자리에 세웠다. 인터뷰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미리 준비해 같이 만들거나 나눠 먹었다. 김밥·떡볶이·컵라면·막걸리 등 평범하고도 익숙한 뽀빠이릴게임 음식에서 “삶이 묻어나왔다”. 식사 한 그릇을 통해 고단하고도 위대한 타인의 생을 잠시나마 엿보았다. 전체 녹취록 분량은 200자 원고지 2000장이 넘는다. 인터뷰이 한 명당 최소 100장 이상 된다. 은유에게 인터뷰는 “사람을 살게 하는 말을 모으고 나누는 일(〈아무튼, 인터뷰〉)”이다. 무성한 말의 숲을 보물찾기하듯 즐겁게 헤매며 글로 꿰어냈다.
백경게임
글을 밥으로 바꿔 먹은 세월이 어느덧 20년을 넘었다. 프리랜서 집필 노동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 ‘몸’이다.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지는 게 나이 드는 거 같아요.” 밤늦게 커피를 마시고도 쉽게 잠들던 날들이 은유에게도 있었다. 원고 쓴다고 밤을 새워도 하루쯤 쉬고 나면 거뜬했던 때도 있다. 바다이야기 모두 과거의 일이다. “도미노처럼 계속 일상이 무너져” 그런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하게 일할 수 없었다. 손가락이 저려 정형외과에 가면 ‘쓰지 말라’는 말이 돌아왔다. 물리치료를 받아도 구부러지지 않는 손가락 두 개를 직업병으로 얻었다. 여느 노동자가 그러하듯 아픈 몸으로 산다. “의사들 맨날 하는 말이 쓰지 말래. 안 쓰면 나는 누가 먹여?(웃음)” 동시 바다이야기무료 에 늙어가는 몸에 저항하지 않는 법을 궁리한다. 크고 작게 아프면서 몸도 ‘소모품’임을 알게 됐다.
빵과 커피는 은유 작가가 아침밥 대신 자주 먹는 음식이다. ⓒ시사IN 조남진
바다이야기예시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커피를 내린다. 지난밤에 정말 마시고 싶었지만 꾹 참았던 그 커피다. 매일 아침 보상처럼 커피 쿠폰이 주어지는 기분이다. 커피의 가장 좋은 짝꿍은 빵이다. 지난밤 좋아하는 빵집에 들러 미리 사둔 빵을 예쁜 접시에 옮겨 담으면 아침 준비 끝. “아침에 빵이랑 커피 먹으려고 눈떠요. ‘빵 먹어야지’ 생각하면서 일어나요.” 어디선가 ‘다정함은 탄수화물에서 나온다’라는 말을 처음 봤을 때 그야말로 ‘빵’ 터졌다. 배가 고프면 쉽게 삶을 비관하곤 하던 자신이 떠올라서다. 아침밥을 차리는 대신 빵을 먹을 수 있게 된 건 길고도 긴 육아 러닝타임이 끝나고부터였다. 여섯 살 터울 아이 둘을 성인으로 기르는 데 26년이 필요했다. 매일 오전 6시에 시작되던 하루를 오전 8시에 시작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굉장히 감격했다”.
마흔한 살의 데뷔, 그리고 책 14권
예전에는 직접 제빵을 하기도 했다. 서울 목동에 살면서 전업으로 육아를 하던 때다. 남과 나를 자꾸만 비교하며 ‘유행’에 휩쓸리곤 했다. 파운드케이크도 만들고 쿠키도 구웠다. “아기 키우는 데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정말 예뻤고, 그만큼 어쩔 줄 몰랐고요. 나한테 아이의 너무 많은 것이 걸려 있더라고요.” 그때 아이는 “내 앞에 주어진 너무 중요한 과제”였다. 먹는 기쁨만큼이나 먹이는 기쁨이 은유를 살게 했다. 그렇게 몸에 밴 습관이 지금은 은유를 살린다. 바쁘고 힘들어도 식사는 포기하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밥은 꼭 챙겨 먹는다.
식사와 수면 중에 골라야 하면 밥이다. “아무래도 엄마로서, 돌봄 양육자로 산 시간이 길어서 그런 것 같아요. 내 감정이나 기분과 상관없이 가사 노동을 해야 하니까. 그게 저한테는 어렵지 않아요. 타인을 먹이면서 나도 먹는 거죠. 기분이 좋아도 슬퍼도 그냥 밥은 밥이지.” 아이 둘을 키우는 동안 엄마도 함께 자랐다. 가사 노동은 고단한 만큼이나 귀한 삶의 기술을 남겼다. 먹고 싶은 음식을 뚝딱 해낼 수 있는 기술, ‘나는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다’라는 자부심이 부록처럼 따라다녔다. 시장 한 바퀴 휘 돌다 보면 마음이 바빠진다. 제철인 섬초를 겨울 지나기 전에 먹기 위해서, 번거롭지만 직접 손질하면 더 맛있는 우엉의 흙맛을 알아서 장바구니가 이내 두둑해진다.
글쓰기는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배우자가 실수로 거액의 채무를 떠안았다. 집을 팔아도 돈을 갚을 수 없었다. 둘째가 세 살 무렵이었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전공’을 살려 은행에 이런저런 지원서를 넣었지만 번번이 답을 얻지 못했다. 30대 중반의 엄마를 반기는 곳이 없었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집 안의 천사’로만 살 수 없게 되면서 ‘좋은 엄마’에 대한 기준도 재조정해야 했던 시기다.
몰락의 경험은 배움을 남겼다. “무언가를 잃어본 사람은 그것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게 되거든요.” 생활고 앞에서 은유는 역설적으로 “돈은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일했던 증권회사에서 알게 된 노동조합 선배의 주선으로 2005년 프리랜서 사보 기자로 일해서 처음 번 원고료는 20만원. 최소한의 생계비만 벌더라도 글을 계속 쓰고 싶다는 욕구가 자신에게 있음을 알게 됐다. 필명을 만들어 이름을 돌려 쓰면서 일을 받았다. 생계와 돌봄을 병행하며 삶을 대하는 맷집을 키웠다. 사보에는 나름의 미덕이 있었다. 개성 있는 글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무리 다양한 사람을 만나도 쓸 수 있는 형식과 매수가 정해져 있었다. 은유는 그 경험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글쓰기를 ‘훈련’했던 시간으로 추억한다. 그 덕분에 다른 글쓰기의 가능성을 탐색해볼 수 있었다.
2012년 첫 책 〈올드걸의 시집〉이 나왔을 때가 마흔한 살이었다. 마흔 살에 〈나목〉으로 데뷔한 박완서가 소설을 썼다면 은유는 40대 내내 르포르타주를 썼다. 단독 저서로만 어느덧 책 열네 권을 낸 작가가 됐다.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를 다룬 〈폭력과 존엄 사이〉(2016), 출판업을 둘러싼 다양한 직업을 인터뷰한 〈출판하는 마음〉(2018), 현장실습생 김동준의 죽음을 추적한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2019), 미등록 이주아동을 다룬 〈있지만 없는 아이들〉(2021), 〈한겨레〉 연재물 ‘은유의 연결’을 통해 만난 인터뷰를 모은 〈크게 그린 사람〉(2022), 한국 문학 번역가의 일하는 마음을 살펴본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2023)까지 여섯 권이 인터뷰를 기반으로 쓰였다. 지난해 출간된 〈아무튼, 인터뷰〉는 은유의 인터뷰 노하우를 집약한 책이다. 만난 사람과 써온 글을 배신하지 않으며 살기 위해 애쓴다. “나는 그냥 은유가 아니라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쓴 은유, 〈있지만 없는 아이들〉을 쓴 은유인 거예요. 내 책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돼야 할 책임이 저한테 있더라고요. 뱉어놓은 말과 글이 다 내 업보야(웃음).”
은유의 작업물을 설명하는 또 다른 큰 주제는 글쓰기다. 〈글쓰기의 최전선〉(2015), 〈쓰기의 말들〉(2016),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2023)는 글쓰기 수업을 하며 익힌 것을 나누기 위해 쓴 책들이다. 그 덕분에 글쓰기와 관련된 강연이 은유의 생계를 힘껏 부축한다. 어느 날은 강원도 산골에, 어느 날은 남해 바닷가 앞에 노트북을 펼쳐놓는다. 낯선 이들과 함께 글을 쓰며 삶을 섞는다. 독자를 만나는 일은 생계에도 도움이 되지만, 무엇보다 “르포 작가의 정체성을 가지고 내가 모르는 삶의 자리에 가보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독서와 비슷한 희열이 있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이 즐겁다. 편견이 깨진 자리마다 호기심과 연민이 자랐다. SNS를 폐쇄할까 마음먹다가도, 그 창을 통해 연결되는 세상을 포기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몸이 가지 못할 때는 손가락이라도 움직인다. ‘홍보 요정’ 은유의 SNS는 시민사회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의 게시판 역할도 겸한다.
은유 작가가 오른팔에 새긴 레터링 타투. ‘비포 선셋’은 글쓰기의 시작을 떠올리게 하는 문구다. ⓒ시사IN 신선영
그동안 은유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안 하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시간을 절박하게 필요로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도태될까 무서웠다. 전업 작가로 살 수 있는 드문 행운을 누리면서 불안을 다스리는 법도 익혔다. 태생이 그리 걱정이 많은 편이 아니긴 하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을 단 책이 많아지는 것은 자랑스럽기보다 두렵다. “사람들은 작가를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안 쓰는 날이 더 많아요. 일할 때 제가 가장 많이 할애하는 시간은 읽는 시간이에요. 그다음으로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이른바 ‘현장’을 가요. 뭘 쓰려는 목적으로 가지 않고, 시민으로 가요. 인풋이 없는데 아웃풋이 계속 나오는 건 제 무덤 파는 거죠. 한 말 또 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해요. 삶이 먼저고 쓰기는 그다음이에요. 내 삶을 살아야 글도 나와요. ‘산다’가 앞에 있어야 해요.”
일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받으려 한다. 일정을 정할 때 갑작스러운 장례식 참석처럼 ‘사람 노릇’ 할 수 있는 빈 공간을 확보하려고 한다. 일정과 업무량, 컨디션을 살펴 일을 ‘해치우듯 하지 않을 수 있는가’도 신중하게 따져본다. 두 번째 기준은 ‘배움’이다. 다소 힘들어 보여도 배움이 있는 자리라 생각되면 기꺼이 나아간다. 글쓰기를 평생의 ‘업’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글쓰기가 내 삶에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함부로 쓰고 싶지 않아요. 독자를 존중하고 싶지, 독자에게 아부하고 싶지 않거든요.” 제 존재를 작가의 자리에 묶어두기보다는 유연하게 흐르며 살고 싶다.
“인터뷰는 끝이 없다”
글쓰기는 자신의 삶에 중요한 일이지만 타인의 삶에 앞서는 일은 아니다. 은유는 작가야말로 땅에 발을 제대로 딛고 서 있어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얼어죽을 창작의 고통. 그놈의 ‘글 감옥’(웃음). 저는 작가라는 직업이 사회적으로 너무 고평가돼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노동이라고 힘들고 진이 안 빠지겠어요. 그런데 보통의 평범한 노동자는 자기 일을 언어화하지 않죠.” 은유에게는 모든 노동이 어느 정도 힘들고, 어느 정도 귀하다. 특히 저평가된 노동의 세계를 더 많이, 더 부지런히 세상에 옮기려 한다. 글쓰기라는 수단을 갖고 있지 않은 노동자들을 인터뷰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올 때면 과격한 움직임을 자제하고 살살 걸었는데, 몸에 차곡차곡 담아온 이야기가 헝클어질까 봐 그랬다(〈아무튼, 인터뷰〉).”
그런 마음가짐으로 1년6개월간 〈시사IN〉 지면에 ‘먹고사는 일’ 연재를 이어왔다. “동료 프리랜서가 ‘뭐 하다 안 되면 급식실 가지’ 이러더라고요. 근데 우리가 급식 노동자도 만났잖아요. 급식 노동은 아무나 하는 줄 아나(웃음). 쉬워 보이는 일은 있어도 쉬운 직업은 없다, 타인의 노동을 함부로 얕잡아 보지 마라… 연재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세상에 전달하고 싶었어요.”
지난해 12월29일 은유는 접이식 미용 베드 위에 누워 있었다. 쉰네 살이 되도록 아직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들떠 있었다. 타투이스트 황도를 인터뷰한 뒤 타투를 결심했다. 원고 마감 후 ‘첫 타투’를 무엇으로 새길지 고심했다. 비포 선셋(before sunset). 프리랜서 작가로 처음 일할 때 이메일과 블로그 주소로 썼던 문구다. 글쓰기의 출발과 첫 마음을 기억하기에 맞춤했다. 동명의 영화도 정말 좋아한다. “영화 〈비포 선셋〉 너무 좋지 않아요? 내내 말하고 걷고 노래하는 주인공들의 ‘말길’이 끊기지 않는 영화잖아요. 사람, 대화, 음악… 삶에서 필요한 게 꼭 맞게 있는 영화예요.”
타투를 하기 전 타투이스트에게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선셋은 좋아하는 풍경. 해 질 녘의 쓸쓸함은 영원한 문학적 공간이다. 자기 안의 이야기를 피 토하듯 쏟아내는 붉음을 보노라면 어김없이 슬퍼진다. 어이없이 사라지는 해처럼 나도 삶에서 죽음으로 순식간에 넘어갈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받은 걸 도로 다 내놓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비포는 삶의 유한성에 관한 상기다.” 걱정과 달리 타투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두 시간 정도 걸려 완성된 레터링 타투를 보고 새로운 용기를 냈다. 다음에는 반려 고양이 ‘무지’의 얼굴을 새겨넣고 싶다.
인터뷰는 이렇게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일 앞에 은유를 자주 데려다 놓았다. 타투이스트 황도를 만나 타투를 하고, 전태일의료센터 등에 기부한 유튜버 김가인과 가수 안예은을 만나고 나서는 인세 일부를 기부했다. “제가 지식이 많거나 학문적 토양이 있거나 했던 게 아니잖아요. 먹고살 수 있었던 건 누군가가 나에게 이야기해줬기 때문이고, 그걸로 글도 쓰고 책도 냈기 때문에 제가 버는 돈이나 받는 사랑이 다 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걸 세상에 어떻게 흘려보낼지가 저한테는 중요한 과제예요.”
‘먹고사는 일’ 연재는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의 마중물을 만들고자 시작했다. 1월20일 임상혁 녹색병원장이 은유 작가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시사IN 장일호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사람을 알게 되어서 은유는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된다. 그래서 “인터뷰는 끝이 없다”. ‘먹고사는 일’을 연재하는 동안에도 작지만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은유는 일상에서 만나는 노동자들을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 됐다. 청소 노동자가, 식당 노동자가, 배달 라이더가, 버스 기사가 내가 인터뷰한 사람을 통해 ‘아는 사람’이 됐기 때문이다. 그 얼굴들에서 은유는 우리 시대의 전태일을 몇 번이고 다시 만났다.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를 한다는 게 좀 쑥스럽잖아요. 그래서 예전에는 속으로만 인사했거든요? 그런데 인터뷰하고 나니까 일상에서 만나는 분들을 다 내가 만난 사람과 겹쳐 보게 되는 거죠. 결국 타인이 저를 살게 하는 것 같아요. 저를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제가 종교는 없지만, 인터뷰를 종교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요. 우리의 일상을 떠받치는 일을 하는 분들을 투명인간 취급하기 싫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요즘 인사 잘하는 어른이 됐어요. ‘안녕하세요!’ ‘수고 많으십니다!’ ‘고맙습니다!’(웃음)”
[캠페인] 전태일의료센터, 여러분의 이름으로 채워주세요
아픈 몸 너머 사회를 치료하는 이 병원의 이름은 ‘전태일’입니다.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들여다보면 구조적인 안전문제가 꼭 숨겨져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덜 아프고 덜 다칠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사회와 함께 행동하는 병원을 만듭니다. 전태일의료센터는 2027년 건립을 목표로 시민들의 건립 기금 참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참여 문의: taeilhospital.org).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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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다’와 ‘살다’는 붙어 다니는 말이다. 먹어야 살고, 살기 위해 먹는다. 그 과정 전부를 ‘일’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2024년 8월부터 르포 작가 은유(54)의 인터뷰 ‘먹고사는 일’이 〈시사IN〉에 연재됐다. 일하는 사람이 덜 죽고 덜 다치는 세상을 위한 전태일의료센터 건립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1년6개월 동안 총 17명을 만났다. 일하는 사람, 평범한 사람들을 주인공 자리에 세웠다. 인터뷰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미리 준비해 같이 만들거나 나눠 먹었다. 김밥·떡볶이·컵라면·막걸리 등 평범하고도 익숙한 뽀빠이릴게임 음식에서 “삶이 묻어나왔다”. 식사 한 그릇을 통해 고단하고도 위대한 타인의 생을 잠시나마 엿보았다. 전체 녹취록 분량은 200자 원고지 2000장이 넘는다. 인터뷰이 한 명당 최소 100장 이상 된다. 은유에게 인터뷰는 “사람을 살게 하는 말을 모으고 나누는 일(〈아무튼, 인터뷰〉)”이다. 무성한 말의 숲을 보물찾기하듯 즐겁게 헤매며 글로 꿰어냈다.
백경게임
글을 밥으로 바꿔 먹은 세월이 어느덧 20년을 넘었다. 프리랜서 집필 노동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 ‘몸’이다.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지는 게 나이 드는 거 같아요.” 밤늦게 커피를 마시고도 쉽게 잠들던 날들이 은유에게도 있었다. 원고 쓴다고 밤을 새워도 하루쯤 쉬고 나면 거뜬했던 때도 있다. 바다이야기 모두 과거의 일이다. “도미노처럼 계속 일상이 무너져” 그런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하게 일할 수 없었다. 손가락이 저려 정형외과에 가면 ‘쓰지 말라’는 말이 돌아왔다. 물리치료를 받아도 구부러지지 않는 손가락 두 개를 직업병으로 얻었다. 여느 노동자가 그러하듯 아픈 몸으로 산다. “의사들 맨날 하는 말이 쓰지 말래. 안 쓰면 나는 누가 먹여?(웃음)” 동시 바다이야기무료 에 늙어가는 몸에 저항하지 않는 법을 궁리한다. 크고 작게 아프면서 몸도 ‘소모품’임을 알게 됐다.
빵과 커피는 은유 작가가 아침밥 대신 자주 먹는 음식이다. ⓒ시사IN 조남진
바다이야기예시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커피를 내린다. 지난밤에 정말 마시고 싶었지만 꾹 참았던 그 커피다. 매일 아침 보상처럼 커피 쿠폰이 주어지는 기분이다. 커피의 가장 좋은 짝꿍은 빵이다. 지난밤 좋아하는 빵집에 들러 미리 사둔 빵을 예쁜 접시에 옮겨 담으면 아침 준비 끝. “아침에 빵이랑 커피 먹으려고 눈떠요. ‘빵 먹어야지’ 생각하면서 일어나요.” 어디선가 ‘다정함은 탄수화물에서 나온다’라는 말을 처음 봤을 때 그야말로 ‘빵’ 터졌다. 배가 고프면 쉽게 삶을 비관하곤 하던 자신이 떠올라서다. 아침밥을 차리는 대신 빵을 먹을 수 있게 된 건 길고도 긴 육아 러닝타임이 끝나고부터였다. 여섯 살 터울 아이 둘을 성인으로 기르는 데 26년이 필요했다. 매일 오전 6시에 시작되던 하루를 오전 8시에 시작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굉장히 감격했다”.
마흔한 살의 데뷔, 그리고 책 14권
예전에는 직접 제빵을 하기도 했다. 서울 목동에 살면서 전업으로 육아를 하던 때다. 남과 나를 자꾸만 비교하며 ‘유행’에 휩쓸리곤 했다. 파운드케이크도 만들고 쿠키도 구웠다. “아기 키우는 데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정말 예뻤고, 그만큼 어쩔 줄 몰랐고요. 나한테 아이의 너무 많은 것이 걸려 있더라고요.” 그때 아이는 “내 앞에 주어진 너무 중요한 과제”였다. 먹는 기쁨만큼이나 먹이는 기쁨이 은유를 살게 했다. 그렇게 몸에 밴 습관이 지금은 은유를 살린다. 바쁘고 힘들어도 식사는 포기하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밥은 꼭 챙겨 먹는다.
식사와 수면 중에 골라야 하면 밥이다. “아무래도 엄마로서, 돌봄 양육자로 산 시간이 길어서 그런 것 같아요. 내 감정이나 기분과 상관없이 가사 노동을 해야 하니까. 그게 저한테는 어렵지 않아요. 타인을 먹이면서 나도 먹는 거죠. 기분이 좋아도 슬퍼도 그냥 밥은 밥이지.” 아이 둘을 키우는 동안 엄마도 함께 자랐다. 가사 노동은 고단한 만큼이나 귀한 삶의 기술을 남겼다. 먹고 싶은 음식을 뚝딱 해낼 수 있는 기술, ‘나는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다’라는 자부심이 부록처럼 따라다녔다. 시장 한 바퀴 휘 돌다 보면 마음이 바빠진다. 제철인 섬초를 겨울 지나기 전에 먹기 위해서, 번거롭지만 직접 손질하면 더 맛있는 우엉의 흙맛을 알아서 장바구니가 이내 두둑해진다.
글쓰기는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배우자가 실수로 거액의 채무를 떠안았다. 집을 팔아도 돈을 갚을 수 없었다. 둘째가 세 살 무렵이었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전공’을 살려 은행에 이런저런 지원서를 넣었지만 번번이 답을 얻지 못했다. 30대 중반의 엄마를 반기는 곳이 없었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집 안의 천사’로만 살 수 없게 되면서 ‘좋은 엄마’에 대한 기준도 재조정해야 했던 시기다.
몰락의 경험은 배움을 남겼다. “무언가를 잃어본 사람은 그것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게 되거든요.” 생활고 앞에서 은유는 역설적으로 “돈은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일했던 증권회사에서 알게 된 노동조합 선배의 주선으로 2005년 프리랜서 사보 기자로 일해서 처음 번 원고료는 20만원. 최소한의 생계비만 벌더라도 글을 계속 쓰고 싶다는 욕구가 자신에게 있음을 알게 됐다. 필명을 만들어 이름을 돌려 쓰면서 일을 받았다. 생계와 돌봄을 병행하며 삶을 대하는 맷집을 키웠다. 사보에는 나름의 미덕이 있었다. 개성 있는 글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무리 다양한 사람을 만나도 쓸 수 있는 형식과 매수가 정해져 있었다. 은유는 그 경험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글쓰기를 ‘훈련’했던 시간으로 추억한다. 그 덕분에 다른 글쓰기의 가능성을 탐색해볼 수 있었다.
2012년 첫 책 〈올드걸의 시집〉이 나왔을 때가 마흔한 살이었다. 마흔 살에 〈나목〉으로 데뷔한 박완서가 소설을 썼다면 은유는 40대 내내 르포르타주를 썼다. 단독 저서로만 어느덧 책 열네 권을 낸 작가가 됐다.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를 다룬 〈폭력과 존엄 사이〉(2016), 출판업을 둘러싼 다양한 직업을 인터뷰한 〈출판하는 마음〉(2018), 현장실습생 김동준의 죽음을 추적한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2019), 미등록 이주아동을 다룬 〈있지만 없는 아이들〉(2021), 〈한겨레〉 연재물 ‘은유의 연결’을 통해 만난 인터뷰를 모은 〈크게 그린 사람〉(2022), 한국 문학 번역가의 일하는 마음을 살펴본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2023)까지 여섯 권이 인터뷰를 기반으로 쓰였다. 지난해 출간된 〈아무튼, 인터뷰〉는 은유의 인터뷰 노하우를 집약한 책이다. 만난 사람과 써온 글을 배신하지 않으며 살기 위해 애쓴다. “나는 그냥 은유가 아니라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쓴 은유, 〈있지만 없는 아이들〉을 쓴 은유인 거예요. 내 책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돼야 할 책임이 저한테 있더라고요. 뱉어놓은 말과 글이 다 내 업보야(웃음).”
은유의 작업물을 설명하는 또 다른 큰 주제는 글쓰기다. 〈글쓰기의 최전선〉(2015), 〈쓰기의 말들〉(2016),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2023)는 글쓰기 수업을 하며 익힌 것을 나누기 위해 쓴 책들이다. 그 덕분에 글쓰기와 관련된 강연이 은유의 생계를 힘껏 부축한다. 어느 날은 강원도 산골에, 어느 날은 남해 바닷가 앞에 노트북을 펼쳐놓는다. 낯선 이들과 함께 글을 쓰며 삶을 섞는다. 독자를 만나는 일은 생계에도 도움이 되지만, 무엇보다 “르포 작가의 정체성을 가지고 내가 모르는 삶의 자리에 가보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독서와 비슷한 희열이 있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이 즐겁다. 편견이 깨진 자리마다 호기심과 연민이 자랐다. SNS를 폐쇄할까 마음먹다가도, 그 창을 통해 연결되는 세상을 포기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몸이 가지 못할 때는 손가락이라도 움직인다. ‘홍보 요정’ 은유의 SNS는 시민사회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의 게시판 역할도 겸한다.
은유 작가가 오른팔에 새긴 레터링 타투. ‘비포 선셋’은 글쓰기의 시작을 떠올리게 하는 문구다. ⓒ시사IN 신선영
그동안 은유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안 하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시간을 절박하게 필요로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도태될까 무서웠다. 전업 작가로 살 수 있는 드문 행운을 누리면서 불안을 다스리는 법도 익혔다. 태생이 그리 걱정이 많은 편이 아니긴 하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을 단 책이 많아지는 것은 자랑스럽기보다 두렵다. “사람들은 작가를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안 쓰는 날이 더 많아요. 일할 때 제가 가장 많이 할애하는 시간은 읽는 시간이에요. 그다음으로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이른바 ‘현장’을 가요. 뭘 쓰려는 목적으로 가지 않고, 시민으로 가요. 인풋이 없는데 아웃풋이 계속 나오는 건 제 무덤 파는 거죠. 한 말 또 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해요. 삶이 먼저고 쓰기는 그다음이에요. 내 삶을 살아야 글도 나와요. ‘산다’가 앞에 있어야 해요.”
일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받으려 한다. 일정을 정할 때 갑작스러운 장례식 참석처럼 ‘사람 노릇’ 할 수 있는 빈 공간을 확보하려고 한다. 일정과 업무량, 컨디션을 살펴 일을 ‘해치우듯 하지 않을 수 있는가’도 신중하게 따져본다. 두 번째 기준은 ‘배움’이다. 다소 힘들어 보여도 배움이 있는 자리라 생각되면 기꺼이 나아간다. 글쓰기를 평생의 ‘업’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글쓰기가 내 삶에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함부로 쓰고 싶지 않아요. 독자를 존중하고 싶지, 독자에게 아부하고 싶지 않거든요.” 제 존재를 작가의 자리에 묶어두기보다는 유연하게 흐르며 살고 싶다.
“인터뷰는 끝이 없다”
글쓰기는 자신의 삶에 중요한 일이지만 타인의 삶에 앞서는 일은 아니다. 은유는 작가야말로 땅에 발을 제대로 딛고 서 있어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얼어죽을 창작의 고통. 그놈의 ‘글 감옥’(웃음). 저는 작가라는 직업이 사회적으로 너무 고평가돼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노동이라고 힘들고 진이 안 빠지겠어요. 그런데 보통의 평범한 노동자는 자기 일을 언어화하지 않죠.” 은유에게는 모든 노동이 어느 정도 힘들고, 어느 정도 귀하다. 특히 저평가된 노동의 세계를 더 많이, 더 부지런히 세상에 옮기려 한다. 글쓰기라는 수단을 갖고 있지 않은 노동자들을 인터뷰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올 때면 과격한 움직임을 자제하고 살살 걸었는데, 몸에 차곡차곡 담아온 이야기가 헝클어질까 봐 그랬다(〈아무튼, 인터뷰〉).”
그런 마음가짐으로 1년6개월간 〈시사IN〉 지면에 ‘먹고사는 일’ 연재를 이어왔다. “동료 프리랜서가 ‘뭐 하다 안 되면 급식실 가지’ 이러더라고요. 근데 우리가 급식 노동자도 만났잖아요. 급식 노동은 아무나 하는 줄 아나(웃음). 쉬워 보이는 일은 있어도 쉬운 직업은 없다, 타인의 노동을 함부로 얕잡아 보지 마라… 연재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세상에 전달하고 싶었어요.”
지난해 12월29일 은유는 접이식 미용 베드 위에 누워 있었다. 쉰네 살이 되도록 아직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들떠 있었다. 타투이스트 황도를 인터뷰한 뒤 타투를 결심했다. 원고 마감 후 ‘첫 타투’를 무엇으로 새길지 고심했다. 비포 선셋(before sunset). 프리랜서 작가로 처음 일할 때 이메일과 블로그 주소로 썼던 문구다. 글쓰기의 출발과 첫 마음을 기억하기에 맞춤했다. 동명의 영화도 정말 좋아한다. “영화 〈비포 선셋〉 너무 좋지 않아요? 내내 말하고 걷고 노래하는 주인공들의 ‘말길’이 끊기지 않는 영화잖아요. 사람, 대화, 음악… 삶에서 필요한 게 꼭 맞게 있는 영화예요.”
타투를 하기 전 타투이스트에게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선셋은 좋아하는 풍경. 해 질 녘의 쓸쓸함은 영원한 문학적 공간이다. 자기 안의 이야기를 피 토하듯 쏟아내는 붉음을 보노라면 어김없이 슬퍼진다. 어이없이 사라지는 해처럼 나도 삶에서 죽음으로 순식간에 넘어갈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받은 걸 도로 다 내놓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비포는 삶의 유한성에 관한 상기다.” 걱정과 달리 타투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두 시간 정도 걸려 완성된 레터링 타투를 보고 새로운 용기를 냈다. 다음에는 반려 고양이 ‘무지’의 얼굴을 새겨넣고 싶다.
인터뷰는 이렇게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일 앞에 은유를 자주 데려다 놓았다. 타투이스트 황도를 만나 타투를 하고, 전태일의료센터 등에 기부한 유튜버 김가인과 가수 안예은을 만나고 나서는 인세 일부를 기부했다. “제가 지식이 많거나 학문적 토양이 있거나 했던 게 아니잖아요. 먹고살 수 있었던 건 누군가가 나에게 이야기해줬기 때문이고, 그걸로 글도 쓰고 책도 냈기 때문에 제가 버는 돈이나 받는 사랑이 다 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걸 세상에 어떻게 흘려보낼지가 저한테는 중요한 과제예요.”
‘먹고사는 일’ 연재는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의 마중물을 만들고자 시작했다. 1월20일 임상혁 녹색병원장이 은유 작가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시사IN 장일호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사람을 알게 되어서 은유는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된다. 그래서 “인터뷰는 끝이 없다”. ‘먹고사는 일’을 연재하는 동안에도 작지만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은유는 일상에서 만나는 노동자들을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 됐다. 청소 노동자가, 식당 노동자가, 배달 라이더가, 버스 기사가 내가 인터뷰한 사람을 통해 ‘아는 사람’이 됐기 때문이다. 그 얼굴들에서 은유는 우리 시대의 전태일을 몇 번이고 다시 만났다.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를 한다는 게 좀 쑥스럽잖아요. 그래서 예전에는 속으로만 인사했거든요? 그런데 인터뷰하고 나니까 일상에서 만나는 분들을 다 내가 만난 사람과 겹쳐 보게 되는 거죠. 결국 타인이 저를 살게 하는 것 같아요. 저를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제가 종교는 없지만, 인터뷰를 종교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요. 우리의 일상을 떠받치는 일을 하는 분들을 투명인간 취급하기 싫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요즘 인사 잘하는 어른이 됐어요. ‘안녕하세요!’ ‘수고 많으십니다!’ ‘고맙습니다!’(웃음)”
[캠페인] 전태일의료센터, 여러분의 이름으로 채워주세요
아픈 몸 너머 사회를 치료하는 이 병원의 이름은 ‘전태일’입니다.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들여다보면 구조적인 안전문제가 꼭 숨겨져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덜 아프고 덜 다칠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사회와 함께 행동하는 병원을 만듭니다. 전태일의료센터는 2027년 건립을 목표로 시민들의 건립 기금 참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참여 문의: taeilhospital.org).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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