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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산업수장, 악수는 했지만… >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상무부 회의실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오른쪽)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양측은 한·미 관세협상 등을 논의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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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다른 나라도 돈을 내고 관세를 낮추는 것(buy it down)을 허용하겠다”고 말했다. 일본이 시장 개방과 5500억달러(약 760조원) 대미 투자를 약속하고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깎은 것처럼 한국 등 다른 나라도 관세를 낮추려면 ‘선물 보따리’ 원금균등분할상환방식 를 내놓으라고 노골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 중앙은행(Fed) 청사를 찾은 자리에서 ‘다른 나라도 돈을 내고 관세를 낮출 수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렇다”며 이같이 밝혔다. 일본이 약속한 5500억달러를 “사이닝 보너스”(계약을 위한 선불금)라고 표현하며 “일본은 우리에게 5500억달러를 줬고 관세율을 약간 성심수녀회 낮췄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관세 인하를 산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SNS에 호주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방침을 알리며 “우리의 훌륭한 소고기를 거부하는 나라들을 두고 보겠다”고 말했다. 한국에도 소고기 수입 개방을 요구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는 8월 1일 상호관세 부과를 앞두고 한국에 ‘최대 압박’을 국민주택기금 대출금리 가하고 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25일 워싱턴DC에서 열 예정이던 한·미 재무·통상 수장의 ‘2+2 협의’를 돌연 취소했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의 면담도 불발됐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CNBC에 출연해 “한국이 일본의 합의를 읽을 때 한국의 입에서 욕설이 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한국은 일본의 협상 타결을 봤을 때 ‘아, 어쩌지’ 그랬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과의 협상 타결을 이용해 한국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은 것이다.
이후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러트닉 장관과 80분간 면담한 뒤 “8월 1일 전까지 국익 극대화 관점에서 최선의 결과가 도출되도록 모든 역량을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 관세 협상에 이상 기류가 커지자 대통령실은 25일 강훈식 비서실장 주재로 김용범 정책실장,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참석한 긴급 통상대책회의를 열었다.
"韓과 협상전략은 셰이크다운"…관세인하 대가로 탈탈 턴다는 美"관세 깎으려면 日처럼 돈 내라" 美 속내는
“한국과 일본에 대한 협상전략은 셰이크다운(shakedown·마구 흔들어서 터는 것)이다.”
최근 미국 워싱턴DC 정가의 한 관계자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비공개 모임에서 한 발언이라며 기자에게 전한 내용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 등을 대하는 태도는 ‘주고받기’와는 거리가 멀다. 이들은 한국 등이 ‘미국을 벗겨 먹었다’는 인식에 근거해 그 대가를 받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지불능력 한계 시험하는 美



오는 8월 1일 트럼프 대통령이 통지한 상호관세(25%)가 발효될 예정인 가운데 한국의 협상 전략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미국과 주요국의 관세협상이 진전되지 못하던 지난주까지만 해도 시한에 매이지 말고 국익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자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하지만 일본과의 협상이 갑작스럽게 타결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유럽연합(EU)도 상호관세를 15%로 수용하는 선에서 관세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상황이 다급해진 것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간 회담이 막판에 취소된 건 상징적이다. 미국 측에 실제로 사정이 있었는지와는 별개로 ‘급한 쪽은 한국’이라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보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돈을 내고 관세를 낮추라”며 일본 수준의 ‘가격표’를 한국에 들이밀 기세다. 미국 소비시장 접근권을 돈 주고 사라는 뜻이다. 미국은 그 대가로 대규모 투자와 쌀·소고기·디지털 교역 등의 부문에서 시장개방을 원하고 있다. 특히 일본과의 협상에서 5500억달러 규모 투자기금 조성이 포함된 것은 미국 제조업 부흥 비용을 대미 무역흑자국에 전가하겠다는 의도다. 이를 통해 무역적자를 줄이면서 자국 산업을 진흥하겠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기금에 투자한 각국의 이해관계를 미국의 이익에 맞춰 조정하는 역할도 노리고 있다.
미국이 제시하는 가격표는 ‘고무줄’이다. 각국이 치러야 하는 가격은 미국이 내주는 것에 비례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각국의 지불 능력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의적으로 설정한 상호관세를 내세워 관세율을 1%포인트 떨어뜨릴 때마다 추가 대가를 요구했다. EU의 한 외교관은 파이낸셜타임스에 “일본과의 합의는 ‘셰이크다운’ 조건을 명확하게 했다”며 “대부분 회원국은 마땅치 않아 하면서도 이 거래를 수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죄수의 딜레마에 빠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부과한 초기만 해도 세계에선 각국의 보복관세 가능성을 예상했다. 하지만 현재 중국과 EU, 캐나다 정도를 제외하면 보복관세를 언급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미국과의 경제 규모 차이 때문에 보복관세를 부과했다가는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협상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미국이 “경쟁국에 비해 불리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각국의 사정을 활용하고 있다”며 “각국이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형국”이라고 말했다. 각국이 경쟁국과 공동 대응하지 못하는 가운데 미국만이 전체 판을 보면서 불리한 협상을 강요하고 있다는 얘기다.
관세는 경제 문제라는 인식이 깨진 만큼 한국에 대한 그 어떤 불만도 관세 부과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과 가까운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 석방을 주장하며 브라질에 50% 관세를 부과했다. 내정간섭이라는 비판은 개의치 않았다. 워싱턴DC의 한 통상 전문가는 “미국은 언제나 한국이 자기 편에 서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며 “한국이 중국과 거리를 두는 걸 망설이는 모습이 현재 관세협상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안이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김형규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