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 the skin ;
열과 막

도시는 단순히 인구가 밀집된 거주 공간이 아니다. 경제와 사회, 문화와 정치의 관계망이 켜켜이 응축된 복합체이자, 끊임없이 긴장과 균열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유기체다. 건축과 산업 구조, 교통 체계와 같은 물리적 요소뿐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과 관계, 권력과 역사의 층위가 겹쳐져 작동한다. 따라서 도시는 언제나 압력과 감각이 교차하는 장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그 표면은 열을 받아 흔적을 남기고, 다시 새로운 막을 형성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부산은 이러한 도시적 조건을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대도시다. 항만과 공단, 주거지와 상업지가 충돌하며, 개발과 쇠퇴가 동시에 진행되는 풍경 속에서 공간의 결이 형성된다. 산업화의 흔적, 재개발의 균열, 전쟁 피란민의 기억과 국제 교류의 흔적은 부산이라는 도시의 여러 층위를 만든다. 이번 전시 〈Under the Skin: 열과 막〉은 이러한 부산의 조건을 ‘열(Heat)’과 ‘막(Skin)’이라는 두 개념으로 정리한다. 열은 구조적 긴장과 사회적 압력의 층위를 의미하며, 막은 그것을 감각하고 반응하는 개인의 경계다. 사진은 바로 이 과정의 매개로서, 압력과 감각 사이를 이어주는 또 하나의 피부처럼 작동한다.

전시가 열리는 일산수지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더욱 선명히 드러낸다. 과거 플라스틱 재생 및 착색 공장이었던 이 공간은 거칠게 남겨진 벽과 높은 층고, 산업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지금은 예술적 실험의 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곳은 과거의 압력이 새겨진 동시에 새로운 감각이 발생하는 막으로 기능하며, 전시의 맥락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참여 작가들의 작업은 도시와 사회, 개인의 관계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탐구한다. 곽동경은 근대와 현대의 전환 속에서 배제된 역사와 산업 전환기의 욕망을 추적하며, 권하형은 재개발로 변해버린 고향을 개인적 애착이 깃든 장소의 감정으로 기록한다. 김유나는 인간 사이의 보이지 않는 심리적 거리를 공간적 형태로 드러내고, 김효연은 가족사와 한국 현대사의 교차점에서 역사적 사건이 개인과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신정식은 알츠하이머를 앓는 아버지를 기록하며 기억의 파편화를, 심재창은 목욕탕이라는 공동체적 공간을 통해 일상의 세부와 온기를 다시 환기한다. 윤아미는 관계 속 고통과 약자의 위치를 주목하며 개인적 기억을 집단의 역사로 확장하고, 이재균은 보이지 않는 구조와 정서를 포착하며 기술 의존 사회의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최원교는 사진의 기록성과 변형 가능성을 실험하며 디지털의 비물질성과 물리적 조형 사이의 긴장을 탐구한다.

해외 작가들 역시 자신이 속한 도시의 맥락 속에서 기억과 흔적을 재해석한다. 린 쉬안랑은 대만의 거리 풍경과 정서를 기록하며 소외와 소속감 사이의 긴장을 다루고, 황 유슈는 공간을 통해 사회적 시선과 오해 속에 살아가는 이들의 심리를 탐구한다. 장 징홍은 환경과 문화의 관계를 재해석하며 종교 의식과 공동체의 심리적, 신체적 의미를 시각화한다. 율리아 뤼베케는 돌봄 제도와 폭력, 그리고 저항의 역사를 아카이브 형식으로 구축하며, 오스카 레벡은 폐허의 풍경을 기록하면서 ‘기억이 공간에 고정될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필립 체티니스는 가상의 미래 사건과 자전적 요소를 결합해 다큐멘터리적 미학과 초현실적 구성을 동시에 실험하고, 미즈시마 타카히로는 도시와 사람의 관계를, 그리고 회상을 설치적 사진으로 전환해 사진을 공명하는 장소로 제시한다.

개인의 목소리와 역사적 파편이 만나는 자리에서, 사진은 그 교차를 기록하는 매체로 기능한다. 도시는 사적 기억과 공적 기억이 층층이 쌓여 기록과 역사로 전환되는 장소다. 거대한 유기체로서의 도시 안에서 개인은 때로는 작은 소품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각자가 지닌 고유한 가치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사진은 이러한 층위를 기록하는 매체이며, 관객은 이 안에서 개인의 고뇌와 산업화의 흔적, 사회적 담론을 동시에 감지할 수 있다. 〈Under the Skin: 열과 막〉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현재의 도시와 그 속의 사람을 바라보는 현장이다.

큐레이터 손창안, 이재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