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를 벗어나 낯선 땅으로 이주한 식물들이 자기 자리를 잡으려 분투한다. ©배정한 제공
눅눅한 생각을 말리러 옥상에 나갔다. 어, 못 보던 친구다. 봄을 맞은 공중 정원에 새로 등장한 이름 모를 풀꽃. 학생들이 심은 바늘꽃이 봄볕에 높이 자라 주인 행세를 하지만, 실은 셀 수 없이 다양한 종의 식물들이 서로 얽혀 함께 거주한다. 세찬 겨울바람에 실려, 고향으로 돌아가는 어느 새의 부리에 숨어, 누군가의 신발에 묻어 비좁은 식재 상자 안으로 이주한 그들. 낯선 공간을 자신의 장소로 가꾸기 위해, 자기 자리를 잡기 위해 분투하는 그들을 잡초라고
바다이야기예시야마토게임 부르는 건 잔인한 일이다.
식물은 움직이지 못하는 존재의 대명사다. 우리는 ‘식물인간’이라는 표현을 대뇌 손상으로 인지와 사고 능력을 상실하고 운동성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의학 용어로, 무가치하거나 능동적이지 않은 사람을 뜻하는 조롱 섞인 은유로 쓴다. 식물을 한자리에 고정된 배경으로 간주하는 오랜 편견의 단면이다.
그
릴게임바다이야기 러나 식물의 생애는 역동적이다. 씨앗은 바람의 궤적을 따라, 새의 내장 속에서 잠든 채, 인간의 보따리에 숨어들어 대륙과 대양을 건넌다. 스스로 이주를 선택하기도 한다. 식물신경생물학자 스테파노 만쿠소가 ‘식물성 도시, 피토폴리스’(김영사, 2026)에서 설명하듯, 식물도 “생존에 더 적합한 장소를 찾아 대이동”한다. 식물이 특정한 좌표에 붙박이는 유일한
오징어릴게임 경우는 조경가의 설계 도면 위에서뿐. 자의든 타의든 식물은 경계선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장소를 다시 정의한다.
생태계 교란종으로 낙인찍힌 서양등골나물. 인간이 그은 경계선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장소를 재정의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황금성게임랜드 서울 용산공원 계획에 참여하며 이웃한 남산의 숲을 조사한 적이 있다. 말이 현장 조사지, 식물에 무지한 나로서는 호젓한 가을 산책. 짙은 가을 숲에 펼쳐진 순백의 꽃밭이 눈을 사로잡았다. 함께 걷던 식물생태학자에게 식물 이름을 묻자, “북아메리카 원산의 여러해살이풀인 ‘서양등골나물’이며 대표적인 생태계 교란종”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알라딘릴게임 는 “이 침입종은 50년 전쯤 남산에서 처음 발견됐는데 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억척같은 생명력으로 빠르게 퍼져 자생종의 서식지를 다 망치고 있다. 전부 걷어내고 원래 이 땅에 살던 식물들로 교체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단호한 어조에는 외래종을 장소의 순수성을 더럽히는 불청객이나 점령자로 여기는 시선이 배어 있었다.
답사에서 돌아와 검색해보니, 그 무렵 남산에선 ‘우리’ 식물의 생태계를 지킨다는 명분의 환경단체 행사가 열렸었다. 귀화종 서양등골나물을 뿌리째 뽑아 토착종을 보호한다는 것. 등골이 서늘해졌다. 아리아인 외의 인종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나치 히틀러의 순혈주의가 떠올랐다. 서양등골나물은 교란종이라는 낙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도권 전역으로 흩어져 영역을 넓혀왔다. 인간이 그은 경계를 넘어 새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식물들. 그들의 이동은 생존을 위한 모험이자 이방의 장소에 적응하며 거주의 의미를 새기는 과정이다.
환경역사학자이자 미학자인 제시카 리의 ‘흩어짐’(에트르, 2026)은 “제자리를 벗어나 퍼지고 나아가는 식물과 인간의 얽힘에 관한 시적 탐구”이자 “아름다움과 소속감이라는 우리의 미적 경험에 관하여” 던지는 질문이다. 캐나다로 이주한 웨일스인 아버지와 대만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북미와 유럽의 여러 도시를 오가며 살아온 저자에게 경계를 넘는 일은 삶의 기본값이다. 그는 자신의 혼종적 정체성과 식물들의 이주사를 겹쳐 읽는다. 벚나무, 소나무, 차나무, 망고, 감귤류, 해초, 이끼, 청경채, 콩, 헤더 등 제자리를 벗어난 식물들의 여정을 추적하면서, 흩어지며 퍼져나간 존재들의 생명력이 어떻게 인간의 역사와 장소의 기억에 얽히는지, 그러한 얽힘이 어떻게 아름다움과 교차하는지 살핀다.
“어떤 식물을 ‘잡초’로, 혹은 (…) ‘침입종’이나 ‘외래종’으로 분류할 때, 우리는 그저 그 식물만을 분류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와 동시에 세계 전체에 어떤 질서가 바람직한지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제시카 리는 관상용으로 서유럽에 들여왔으나 왕성한 번식력 때문에 “영국에서 가장 위험한 식물”로 불리게 된 큰멧돼지풀, “세계 최악의 침입종 가운데 하나”로 분류되는 미역, 산성화된 땅에서도 풍성하게 자라 “가장 악명 높은 침입종”으로 여겨지는 히스별이끼 등의 사연을 따라가며, 특정 식물을 제거의 대상으로 낙인찍는 일이 인종 차별이나 외국인 혐오와 닮았음을 짚는다.
연자주색 헤더로 뒤덮인 스코틀랜드의 들판 풍경. \'흩어짐\'의 저자 제시카 리는 이런 낭만적 풍경에 깊이 밴 제국주의의 자취를 직시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우리가 작물이라 부르는 식물들은 항상 문화와 엮여 있다.” 그 식물들의 주된 이동 경로는 제국주의의 탐욕과 자본의 흐름이 남긴 자취와 겹친다. 그러나 “식물은 문화를 상징하게 될수록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문화와 작물 사이에 그어놓은 지정학적 경계를 다시 넘는다. 그들은 새롭고 낯선 장소에 속할 수 있을까. ‘흩어짐’은 제자리를 벗어난 존재들에게 “이토록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아름다움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의미를 둘러싼 모순을 모두 알게 된 뒤에도 우리가 어떻게 아름다움을 믿고 갈망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수 있는지 깨닫게” 해준다(서제인, 옮긴이의 말). 자기 자리는 고정된 좌표가 아니라 경계를 넘어 흩어지는 과정 자체에 있다. 자리를 찾고 잡으려 애쓰는 과정의 아름다움.
배정한 교수
식물뿐이겠는가. 인간도 제자리를 벗어나 흩어지는 존재다. ‘이주하는 인간, 호모 미그란스’(푸른역사, 2016)에서 조일준이 전하듯, “인류의 역사는 이주의 역사이기도 하다. (…) 지구의 여러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자신의 영토를 조금씩 넓혀가는 과정이었다. 우리 모두는 이주자의 후손들이다.” 자리는 존재의 시작이다. 제자리를 벗어난다는 것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 나서는 지난한 분투의 여정이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지난해 대통령 탄핵 심판정에서 인용되어 큰 울림을 준 ‘시인과 촌장’의 노랫말(‘풍경’, 1986)이다. 제자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건 회귀의 열망이 아니다. 찾고 잡기에 너무나 힘겨운 나의 자리, 그곳을 향한 갈망이다.
배정한 서울대학교 조경학과 교수·‘공원의 위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