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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일본 증권가에선 무료 수수료를 내세운 ‘제로 혁명’이 키워드로 떠올랐다. 일본 최대 온라인 증권사인 SBI증권의 대대적인 캠페인이었다. 증권사의 전통적인 수익원 중 하나인 수수료를 없애겠다는 선언은 파격적인 도전으로 여겨졌다.
1년 여 시간이 흐른 지금, SBI증권의 제로 수수료 실험은 어떻게 되었을까. SBI증권의 계좌 수는 일본 최초로 1300만개를 돌파했다. 9월 말 기준 예탁 자산은 전년 동기 대비 36% 늘어나 43조엔에 달했다. SBI홀딩스 그룹 내 전체 고객도 5200만명으로, 일본 인구의 절반에 달했다.



솔로몬저축은행금융권 지난 달 방한한 기타오 요시타카 SBI홀딩스 회장이 서울 도심 호텔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전기병 기자


제로 혁명으로 일본 금융 생태계를 뒤흔든 주인공은 기타오 요시타카(北尾吉孝·73) SBI홀딩스 회장이다. 그는 “수수료 무료 정책을 펼쳤어도 2024회계연도 영업 이익은 전년 전북중기청 보다 11% 늘어나 최고 기록(약 687억엔)을 경신했다“면서 “신규 가입자들이 신용대출 등 다른 서비스를 이용하고 금융상품에 가입하면서 수익 창출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1974년 게이오대학을 졸업한 기타오 회장은 노무라증권에 입사해 일하다가 1995년 소프트뱅크로 자리를 옮겼다. 소프트뱅크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한국은행 금리 회장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노무라 측 담당자가 기타오 회장이었다고 한다. 이후 1999년 현재의 SBI홀딩스를 세웠다.
인터넷은행, 대체거래소(PTS), 블록체인, 반도체... 끊임없는 도전으로 성공을 꿰차는 ‘야성의 승부사’ 기타오 회장을 지난 달 서울 도심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 SBI저축은행 통합 10주년 기념식에 참석 할부회선 확인 하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제로 혁명 서비스를 출시한 계기는?
“일본은 이자가 거의 붙지 않는데도 가계 금융 자산의 54%가 예금이다. 항상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주택담보대출 이자계산 하면 투자를 대중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수수료 무료 정책을 시도했다. 항상 인터넷을 이용한 금융 사업으로 혁명을 일으키고 싶었다. 문턱을 과감히 낮춘 접근 방식으로 고객 기반을 확대했고, 많은 투자자들이 부담 없이 거래할 수 있게 됐다.”
−수수료 수입을 포기했는데 실적은 개선됐다.
“제로혁명은 그룹 전체에 유기적 확장을 가져왔다. SBI증권의 신규 가입자가 그룹 내 다른 금융회사와 교차 거래를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제로혁명 이후 SBI신세이은행 신규 계좌 개설 건수의 70%는 SBI증권을 통해 유입됐다.”
−1300만 계좌는 일본서 처음인가.
“20~30대 젊은층을 중심으로 증권 계좌 개설이 많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이전에 일본 금융청이 2000만엔으론 노후 생활에 부족하다는 보고서로 화제가 됐는데, 이제는 3500만엔은 필요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일본은 2100년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39%가 되는데, 이를 젊은 세대가 지탱하는 건 불가능하다.”



SBI 그룹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3년 전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도 인수했다.
“SBI신세이(新生)은행은 버블 붕괴 이후 옛 일본장기신용은행이 파산해 탄생한 곳이다. 당시 투입된 공적 자금은 20년간 거의 상환되지 않았고, 3500억엔의 부채로 계속 남아 있었다. 혈세를 투입해 재건을 도모하고 있는데 이대론 안 된다고 생각해 주식공개매수(TOB)에 나섰다."
−당시 시장 반응은 어땠나.
“SBI신세이은행 경영진은 강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20년간 혈세를 반환하지 않는 것에 대해 나는 ‘도둑’이라고 말했고, 이런 식으로 은행 영업을 계속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자극적인 말 때문인지, 여론과 금융청이 SBI편이었다. 은행 실적은 계속 좋아지고 있고, 공적 자금도 상환해 나갈 것이다.”
−그룹 자회사가 721곳이나 된다.
“증권, 은행, 보험, 가상화폐, 자산관리, 벤처 등을 전부 아우르는 ‘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SBI그룹 내 모든 회사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제로혁명으로 커진 고객 기반이 그룹 전체에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기타오 리더십’의 원동력은?
“수면 시간이 하루 4시간 30분 정도다. 퇴근할 때 양손에 서류가 가득 들어 있는 가방을 들고 퇴근한다. 신문은 물론이고 잡지, 인터넷 등 여러 매체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지식을 흡수한다. 지금까지 60여권 책을 썼는데 한국에도 몇 권 번역되었다.”
−어디에서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는가.
“세상을 바꿔가는 것은 젊은이들이다. 젊은이들이 무슨 변화를 하는지 봐야 한다. 챗GPT 같은 AI기기에 가장 빨리 적응하는 것도 젊은 세대다. ‘논어’에서 후생가외(後生可畏)라고 했다. ‘라떼는 말이야’ 대신, 감성 풍부한 젊은이들에게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졸 신입사원 면접에도 참여해 그들이 써낸 소논문에서 귀중한 아이디어를 얻곤 한다.”



글로벌 가상자산 시가총액 1위 비트코인이 지난 5일 사상 처음으로 10만달러를 돌파했다./로이터 뉴스1


✅트럼프 2.0 시대의 재테크 전략
−트럼프 2기의 글로벌 금융시장 전망은?
“대다수 메이저 언론들은 해리스 후보의 승리를 예측했지만, 나는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것이라고 봤다. 트럼프의 청중 동원력이 훨씬 강력했고, 고물가 등 미국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트럼프 후보의 주장이 젊은 층에게 지지를 받을 것이란 인상을 받았다. 공약들을 검증해 봤는데, 어느 쪽이든 상당한 재정 지출을 필요로 하고 있다. 재원을 충당하려면 국채를 발행해야 하므로 장기 금리는 그렇게 쉽게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 본다.”
−관세 부과가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전세계 모든 수입품에 10%, 중국산 수입품에 6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했다. 안 그래도 중국은 경제가 부진한데 미국의 관세 부과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고 있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이미 자동차 공장이 문을 닫는 등 경제가 예전처럼 좋지 않다. 중동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경제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 달러는 지금보다 더 강해질까.
“트럼프 당선인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우며 전세계에서 여러 산업을 불러 모을 것이다. 이미 대만 TSMC나 한국 SK하이닉스가 미국에 공장을 세우고 있지 않나. 수출 측면에선 달러 약세(cheap dollar)가 유리하겠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내심 ‘달러 패권’을 지키기를 원한다. 달러가 강세여야 미국 소비자 입장에선 수입품을 싸게 살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등 일본 상류층이 거주하는 도쿄 시로가네다이 전경./X(옛 트위터)


−트럼프 2기에 눈여겨봐야 할 수혜 산업은?
“가상화폐 시장이 긍정적이다. 연초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거래를 승인하면서 가상화폐는 정식 자산으로 인정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을 최고 가상화폐 옹호자로 자처하며 가상화폐 산업 성장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미국의 가상화폐 산업 제도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SBI그룹도 가상화폐에 투자했나.
“일찍부터 디지털 자산의 성장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고, 가상화폐 리플(XRP)의 발행사인 리플랩스(Ripple Labs)에 투자한 주요 주주다. 특히 달러 가치에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변동성이 낮아 투자뿐만 아니라 송금, 결제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에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기타오 SBI홀딩스 회장은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일본에서 ‘헝그리 정신’이 퇴색했고 약해진 국력이 수퍼엔저로 나타났다"고 말했다./전기병 기자


−​여유자금이 있다면 어디에 투자하겠나.
“개인적인 투자는 하지 않지만, 일본은 예금 이자가 거의 제로이기 때문에 무언가 하긴 해야 한다. 만약 내가 지금 투자한다면, 도쿄 도심의 맨션을 사겠다. 그 중에서도 지명에 색깔이 들어간 곳, 가령 아오야마(青山), 시로가네다이(白金台), 긴자(銀座) 등이다(※이들 지역은 전부 부촌). 부동산에 한 번 투자하면 팔지 않는데, 항상 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부동산 투자로는 실패한 적이 없다."
−엔화에 투자한 한국인들이 많다.
“환율은 곧 국력을 반영한다. 올해 일본에선 34년 만의 엔저가 나타났고, 나라가 그만큼 약해졌다는 의미다. 과거 일본인들은 이코노믹 애니멀(경제적 동물)이어서 아침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지금은 휴일도 너무 많아졌고 예전만큼 일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 결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39위로 떨어지고 국가 경쟁력 수치도 38위로 하락했다. 세계적인 투자자인 워런 버핏이 엔화로 일본 상사(商社) 주식을 산 것처럼, 이렇게 엔화가 쌀 때 투자하면 환율과 주가 상승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엔화 가치는 올해 34년 만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SBI는 한국 시장에도 진출해 있다.
“10년 전 리먼 위기 때 타격을 입은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을 인수해 SBI저축은행을 설립했다. 리스크 관리를 강조한 덕분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인한 충격이 미미하다. 총 자산이 15조원에 육박하지만, PF 잔액은 1023억원으로 0.7%에 불과하다.”
−한국은 저출산이 심각한데 묘수가 있다면?
“인구 감소는 경제에 있어 치명적인 위협이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가의 미래는 없다. 인구를 늘릴 방법이 없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경력이나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비자를 주는 ‘선택적 이민’을 통해 유능한 인재를 받아들여야 한다.”
bapako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