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비상상고 기각… 원장 ‘특수감금’ 혐의에 무죄 판단 유지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가 특수감금 등 혐의로 기소된 형제복지원장 고 박인근씨에 대한 비상상고를 기각한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법정 앞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 및 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뉴시스1980년대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건인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 고(故)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의 특수감금 혐의 무죄 판결을 취소해달라며 제기된 비상상고가 11일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형제복지원의 ‘인간 존엄성’ 침해를 인정하면서도 법리적으로 원심 판결을 파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대검의 비상상고는 피해자들에 대한 인권유린과 관련해 박씨를 사법적으로 단죄할 마지막 기회였으나, 이날 대법원의 기각 결정으로 끝내 무산됐다. 비상상고는 확정 판결 관련 재판에 법령 위반이 있을 때 잘못을 바로잡아 달라며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직접 상고하는 제도다. 법령 위반이 인정돼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하더라도 기존 확정 판결은 바뀌지 않지만, 대법원 판단에 따라 피해자의 손해배상 소송, 명예 회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이 ‘법리’를 이유로 기각하면서 박씨에 대한 사법 판단도 끝났다.‘한국판 아우슈비츠’라고 불린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랑자 선도’ 명분으로 노숙자·청소년·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무고한 시민을 불법 감금, 강제노역, 집단 구타하며 인권을 유린한 사건이다. 정부가 부랑인을 임의로 단속해 본인의 동의와 수용 기한도 없이 수용시설에 유치할 수 있도록 한 내무부 훈령 제410호(1987년 폐지)가 근거였다.노인과 장애인, 고아를 불법 감금하고 강제 노역에 동원했던 부산 형제복지원. /조선일보 DB1987년 검찰은 박씨를 비롯해 형제복지원 직원 6명을 특수감금·횡령·건축법 위반·폭행치사 등 혐의로 기소했다. 원장인 박씨에게는 특수감금과 횡령 등의 혐의가 적용됐으나, 박씨는 국고 보조금 등을 불법적으로 빼돌린 횡령 혐의만 유죄를 받아 2년 6개월이 선고됐다. 인권유린과 관련한 특수감금 혐의는 무죄를 받았다. 박씨 외에는 폭행치사죄 등이 적용된 이충렬 소대장(징역 1년 6개월), 성태운 경비대장(징역 8개월)에게만 실형이 선고됐고, 나머지는 집행유예형 또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씨는 2년 남짓 수감 생활을 한 뒤 풀려나 복지 관련 사업을 계속 영위했다. 형제복지원 부지는 매각돼 이후 아파트 등이 들어섰다. 복지원은 단죄를 받기는커녕 결과적으로 막대한 부를 챙겼다. 박씨는 2016년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현 정부 출범 이후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2018년 4월 부랑자 수용은 불법 감금에 해당한다며 검찰에 사건 재조사를 권고했고,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이 비상상고를 결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날 “이 사건은 형사소송법에서 비상상고의 사유로 정한 ‘그 사건의 심판이 법령을 위반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비상상고 이유로 제시한 것은 내무부 훈령 410호의 위헌성이었는데, 문제가 된 판결에 적용된 건 ‘법령에 의한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형법 20조이기 때문에 법 위반이 아니라는 취지였다.다만 대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단순히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수준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 사건”이라고 판단하며 “피해자나 유가족에 대한 피해 회복은 마땅히 보장됐어야 할 권리를 돌려주는 것, 앞으로 더 구체화된 피해 회복 조치가 취해지길 바란다”며 손해배상과 명예 회복의 길을 열어줬다.대법원 기각 결정에 피해자와 당시 수사 검사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피해자와 가족 30여 명은 기각 결정 후 대법원 앞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피해자 김모씨는 “대법원 판결은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며 “폭력에다 온갖 감금에다, 41년 넘도록 약 먹고 생활하고 있는데 정부에서 아무런 조치가 없다”고 했다.1987년 이 사건 주임검사였던 김용원 변호사는 본지 통화에서 “대법원의 집단 무결주의 때문에 전두환 정권 법률적 들러리였던 대법관들이 무죄를 선고한 것을 이번 대법원도 유지한 것”이라고 했다.현재 이 사건은 지난해 5월 국회를 통과한 근현대사 주요 인권침해 사건 등을 재조사하는 과거사법 개정안에 따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2기가 재조사를 하고 있다. 다만 보상·배상 관련 조항은 재정 부담을 이유로 빠졌다. 부산시가 별도로 동구 초량동에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종합지원센터’를 열어 피해 접수, 취업 지원 등 업무를 맡고 있다.☞형제복지원 사건1975~1987년 정부가 부랑인 선도를 명목으로 약 3500명의 노인·장애인·고아 등을 부산 형제복지원에 불법 감금한 사건이다. 수용자들은 강제 노역, 폭행, 고문에 시달렸고 확인된 사망자 수만 513명에 달했다. 1987년 검찰은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을 업무상 횡령·특수감금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당시 대법원은 정부 훈령에 따른 수용이었다며 박 원장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횡령 혐의만 유죄를 인정해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했다.[이정구 기자 jglee@chosun.com] [표태준 기자 pyotaejun@chosun.com] ▶ 조선일보가 뽑은 뉴스, 확인해보세요▶ 최고 기자들의 뉴스레터 받아보세요▶ 1등 신문 조선일보, 앱으로 편하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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